미국 이어 유로존도 긴축 시동…드라기 "자산 매입 절반으로 축소"

입력 2017-10-27 05:47   수정 2017-10-27 07:39

ECB 완만한 긴축 행보
2018년부터 월 600억→300억유로
매입 기간은 2018년 9월까지 연장
"물가상승 위해 통화자극 필요"
드라기, 양적완화 지속 여지 남겨

미국 국채 가격 급락
경제지표 호조·세제개편으로
금리인상 빨라질거란 전망 확산
증시로 자금유입 가속화될 듯



[ 허란 기자 ] 미국과 영국에 이어 독일 프랑스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도 긴축에 시동을 걸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국채 등 보유 자산을 축소하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ECB는 자산 매입 규모를 월 300억유로로 줄이는 대신 매입 기간은 9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25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란 전망 속에 ECB의 테이퍼링 계획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 독일의 경제지표 호조도 채권금리 상승을 부추겼다. 수년간 호황을 누리던 채권시장이 ‘베어마켓(약세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CB, 내년 1월부터 채권 매입 절반으로

ECB가 이날 내놓은 테이퍼링 계획은 ‘시장 친화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월 600억유로인 자산 매입 규모를 절반인 300억유로로 축소하지만,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던 자산 매입 기간을 내년 9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ECB는 또 필요할 경우 자산 매입을 내년 9월 이후로 연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매입 규모 역시 상황이 악화되면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ECB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유로존의 경기 회복세가 견조하지만 여전히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5일 발표된 독일 기업들의 경기신뢰도는 사상 최고치로 올랐다. 독일 뮌헨에 있는 IFO 경제연구소가 약 7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환경지수(BCI)는 10월 116.7을 기록하며 7월의 최고치(116.0)를 경신했다. 다만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를 밑돌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올 들어 유로화가 12% 이상 오른 점도 강한 긴축정책을 펼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는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유로존은 여전히 충분한 통화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영국의 11월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4% 증가해 시장 예상치(0.3%)를 웃돌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불안감이 남아 있지만 파운드화 약세로 물가상승률이 3%를 넘어선 가운데 성장률도 개선되면서 다음달 2일 영국 중앙은행(BOE)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장이 예상하는 금리 인상 가능성은 80%까지 상승했다.

◆심리적 지지선 뚫은 美 국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5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전날보다 0.0038%포인트 오른 연 2.444%에 마감했다. 장 초반 연 2.474%까지 뛰었다. 금리 상승은 국채값 하락을 의미한다.

전날 5개월 만에 연 2.4%를 뚫은 데 이어 오름세를 지속하자 월가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심리적 지지선이던 연 2.40%를 돌파했기 때문에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Fed가 연말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밝힌 데다 국채 등 보유 자산 축소에 나선 만큼 지난 5월 이후 국채 금리가 연 2.4% 밑으로 주저앉았던 것과 상황이 다르다.

‘신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추세적인 채권 강세장이 마침내 진실의 순간을 맞았다”며 약세장 전환을 예상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테일러 효과’가 국채 금리를 밀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상원 지도부 간 오찬 자리에서 ‘매파’ 성향이 강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차기 Fed 의장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 전망도 영향을 미쳤다. 9월 내구재(3년 이상 사용 가능 제품) 수주가 두 달째 강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4분기 GDP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9월 미국의 신규 주택판매는 전월 대비 18.9% 급증했다.

트럼프 정부의 세제개편에 따른 경기부양 기대도 커지고 있다. Fed가 오는 12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빈센트 딜루어드 INTL FC스톤 부사장은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더 많은 펀드가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긴축정책이 증시로의 자금 유입을 빠르게 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목되는 일본은행의 선택

일본이 ‘마이웨이’를 지속할지, 아니면 출구전략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여당인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압승 이후 양적완화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다만 일본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개선되면서 완화정책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 임기는 내년 4월 끝난다. 그가 연임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양적완화 기조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의 상한(현재 연 0%)을 더 높이거나 목표 만기를 10년보다 짧게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금리를 경기 기대에 맞게 상승하도록 용인하겠다는 의미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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