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 빠르고 파급력 커…활용범위 사회적 논의 시급"
장기 생산용 돼지 등 속속 성과
배아연구 윤리 논란도 거세져
[ 박근태 기자 ]
유전자 교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는 26일(현지시간) “당장 내일 유전자 가위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린 아기가 태어났다는 발표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파급력이 큰 만큼 활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메리어트 마르퀴스호텔에서 개막한 ‘세계과학기자콘퍼런스(WCSJ)’에서 연사로 나서 “지난 1년간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수정란) 연구가 크게 발전하면서 생명체의 암호(유전자)를 다시 쓰는 시대를 맞고 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2012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감염생물학과 교수와 함께 세균 속에서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단백질을 처음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유전자 가위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DNA에서 병을 일으키는 부분만 정확하게 잘라내는 단백질인 유전자 가위 개념의 창시자다.
책 속의 문장을 지웠다 붙이듯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고 갈아 끼울 수 있는 유전자 가위는 질병 예방과 치료, 동물 복원, 농축산물 개발 분야에 폭넓게 접목되고 있다.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바이오회사 이제너시스는 지난 8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돼지 고유의 바이러스를 없앤 복제돼지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돼지만이 보유한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장기 이식용 복제돼지보다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장기 이식 부작용이 없는 크리스퍼 돼지뿐 아니라 머지않아 베이컨 맛이 좋은 돼지, 크기와 맛을 향상시킨 수박 같은 새로운 농작물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전자 가위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과 식물의 보존에도 활용되고 있다. 병원균에 취약한 식물의 유전자를 제거해 감염을 막는 방식이다. 멸종위기를 맞은 바나나, 미국 밤나무, 중국 밀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질병에 걸려 사라지는 전통 농작물 복원 연구가 활발하다.
하지만 ‘바이오 혁명’을 가져올 획기적인 수단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량 확산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특정 집단에 퍼뜨리는 ‘유전자 드라이브’가 화제가 됐다. 과학자들은 한 해 40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내는 말라리아와 지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모기에 불임 유전자를 붙여 멸종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생명윤리 전문연구기관인 헤이스팅스센터의 그레고리 케브닉 연구원은 “바이러스 박멸이라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드라이브가 집단과 주변 생태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간 배아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쟁도 더 이상 피하기 어려워졌다. 중국은 백혈병과 방광암, 에이즈 같은 난치병 치료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등 인간 배아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영국도 다양한 임상 연구에 착수했다. 한국 연구진도 지난 8월 미국 연구진과 함께 배아에서 질병 유전자를 제거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9월에는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와 배아의 발달 유전자를 규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유전자 가위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부모에게서 대물림되는 유전 질환을 해결할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우월한 유전자만 골라 ‘슈퍼 아기’를 낳을 방법을 찾는 데 이용되는 등 윤리적 논란을 불러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조금만 고쳐도 지능, 시력, 절대음감, 달리기 능력이 올라갈 수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유전자 가위는 처음에는 책에서 문장을 잘랐다가 붙이듯 유전자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오려 붙이려는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 어떤 분야에 활용될지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인간 배아 문제를 비롯해 유전자 교정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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