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떨어진 화랑 매출·경매 실적
2016년 1천억대 국제갤러리 '반토막'
현대·학고재·가나도 20~40% 추락
경매 낙찰률도 80%대→70%대로
든든한 버팀목 잃은 미술계
큰손 컬렉터 홍라희 관장 사퇴로
연 1천억대 미술품 구입 중단
트렌드 이끌 전시도 사라져 '암울'
[ 김경갑 기자 ]
올해 초만 해도 미술시장의 대표적 지표인 경매회사 서울옥션 주가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술경기가 부양될 것이란 기대감에 1만350원대를 유지했다. 여기에다 500만원 이하 작품 구매 고객이 증가하고, 세계 최대 경매업체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한국의 단색화에 주목하면서 시장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지난 3월6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72)가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전격 사퇴하자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홍 여사가 관장직을 내려놓은 지 7개월째인 27일 서울옥션 주가는 6720원으로 30% 이상 떨어졌다.
홍 관장 사퇴 이후 리움의 ‘개점휴업’이 길어지면서 미술시장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는 미술애호가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올해 경매시장 규모도 예년 수준(1720억원)을 밑돌 전망이다.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인 홍 전 관장이 미술품 컬렉션 투자를 중단하면서 국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홍 전 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은 매년 고미술과 현대미술품을 사들이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컬렉터와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상징성을 고려할 때 리움의 개점휴업이야말로 미술 시장의 최대 악재라는 분석이다.
◆메이저 화랑 매출 ‘뚝’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침체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화랑가는 리움의 개점휴업이 더해지면서 한껏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국제갤러리는 올해 영업 실적이 반 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갤러리현대를 비롯해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등 메이저 화랑도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20~4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연간 1000억대 규모의 미술품을 구입할 정도로 막강한 ‘바잉 파워’를 가진 홍 관장이 물러남에 따라 미술계도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도 “전시 성수기인 가을에 대부분 화랑이 기획전 하나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며 “소장품전, 전시장 임대, 지명도가 낮은 작가들의 작품전으로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에 이어 SK, 금호아시아나, 대림산업, 현대자동차, LG 등 다른 대기업도 미술품 컬렉션이나 전시 지원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여러 악재도 있어 기업들의 미술품 구매가 확실히 꺾였고,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갈 것 같아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미술품 경매업계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올해 낙찰총액은 580억원으로 전년 말(930억원)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연말까지 대구와 홍콩 경매, 겨울 메이저 경매 행사를 앞두고 있지만 지난해 수준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K옥션도 홍콩 경매행사를 아예 중단하고 내수에만 집중하고 있다. 올 들어 이달 중순까지 낙찰총액 593억원을 기록했지만 연초 80%대를 유지하던 낙찰률이 지난 18일 가을 경매에서는 75%(낙찰총액 100억원)로 내려앉았다. 최근 ‘큰 그림’ 등 온라인 기획 경매를 통한 애호가 끌어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술계 구심점 부재로 ‘속앓이’
홍 관장의 사퇴로 한국 미술시장이 구심점을 잃었다고 미술계는 평가한다. 경기여고,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전 관장은 수집 파워에다 미술품을 보는 안목도 뛰어나 미술계에 든든한 지원군이었기 때문이다. 매슈 바니,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개인전을 열어 일반 대중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우환의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전시(2011년)를 비롯해 국제시장에 단색화 홍보(2015년), 젊은 유망 작가를 발굴하는 ‘아트스펙트럼’과 ‘파리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을 적극 지원했다. 홍 전 관장이 리움 기획전을 통해 관심을 보인 작가는 작품 가격이 오르고 시장에서 유행했다.
미술 평론가 정준모 씨는 “4월 리움에서 열릴 예정이던 김환기 회고전의 취소 영향으로 단색화 열풍이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라며 “국내 미술계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홍 전 관장의 복귀가 어느 때보다도 아쉽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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