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 진단
[ 박동휘/황정환 기자 ]
서울대 공대 교수들의 경고는 암울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 경쟁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한국이 새로운 경쟁의 무대에선 변방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만 해도 “투자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는 장탄식이 쏟아졌다. 미국 테슬라는 이미 5억 마일 이상의 자율주행 기록을 갖고 있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된 실험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빅데이터(차상균·전기정보공학부), 인공지능(AI) 로봇(장병탁·컴퓨터공학부), 자율주행차(서승우·전기정보공학부), 스마트 팩토리(윤병동·기계항공공학부), 컴퓨터 비전(이경무·전기정보공학부), 드론(이동준·기계항공공학부) 전문가인 6인의 서울대 공대 교수는 “인재 육성만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장은 “디지털 혁신을 위한 ‘100만 엔지니어’를 육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인터뷰는 ‘우리가 만드는 미래’를 주제로 다음달 1일 개막하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7’에 앞서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의 경쟁력을 진단하기 위해 이뤄졌다.
“20년 뒤처지며 골든타임 지나고 있어”
올 연말께 ‘스누버3’를 선보일 예정인 서승우 교수는 “자율주행차 분야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불문하고 5~10년 정도 뒤처져 있다”며 “특히 주행기술 쪽은 20년간 아예 손을 놓고 있던 터라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에 배정된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대부분이 부품 국산화 등 하드웨어에 쏠린 탓이라는 게 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더 심각한 건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한 부품 부문마저도 글로벌 기업들과 격차가 엄청나다는 것”이라며 “국내 자율주행차에 달린 위치인식 장치, AI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 등 핵심 부품이 거의 외국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엔비디아, 이스라엘의 모빌아이 등과 경쟁하기엔 하드웨어 분야에선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자율주행기술 소프트웨어가 그나마 해볼 만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대중교통, 택배 서비스를 비롯해 자율주행차를 위한 정밀지도기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글, 바이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이 분야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압도적인 기술을 내놓은 기업은 없다는 게 서 교수의 평가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실험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이 정부가 나서 10여 년 전부터 전국에 40여 개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실증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 교수는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는 전에 없던 새로운 걸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 없는 경쟁이나 마찬가지”라며 “온갖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실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아쉬워했다.
4차산업 플랫폼 장악 나선 글로벌 기업들
스마트 팩토리 분야 역시 손 놓고 있는 대표적인 미래 산업 중 하나다. 산업설비에서 얻어지는 계측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비 건전성 예측과 관리(PHM) 기술을 개발 중인 윤병동 교수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 지멘스가 ‘똑똑한 공장’이라는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공장에서 쌓이는 ‘산업 데이터’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윤 교수의 경고다. GE가 세운 공장에서 반도체나 자동차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그 공장에서 생산된 정밀 데이터는 GE 쪽에 쌓이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GE는 최적화된 기술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다. 윤 교수는 “지금도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의 80~90%는 독일제나 일제”라며 “데이터 종속을 당하면 나중에 솔루션 가격을 올릴 때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드론 앞세운 중국의 부상도 뚜렷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중국마저 세계를 호령하는 선도기업들을 배출하고 있다. 선전시에 있는 드론 전문기업 DJI도 그중 하나다. 이동준 교수는 “DJI는 기술,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미국 기업들까지 후발주자로 만들고 있다”며 “기존 중국 기업에선 볼 수 없던 제품과 세련된 경영을 선보이며 새로운 중국의 부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기업”이라고 했다.
DJI 직원 수는 7000명 정도다. 그중 약 1500명이 R&D 인력이다. 규모 면에서 다른 드론 경쟁사를 압도한다. 이 교수는 “전기모터, 짐볼 설계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센서 융합, 제어알고리즘 등 전통적으로 미국, 유럽이 강점을 가진 소프트웨어 기술에서도 DJI가 앞서 있다”고 분석했다. 카메라를 사용해 드론의 위치와 주변 환경을 더 정확하게 감지해 비행 성능과 안전성을 향상시키는 고급 기술도 선제적으로 적용 중이다. 상용 제품에는 개발 비용 등의 문제로 채택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술이다.
AI 기술 “아직은 해볼 만하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경무 교수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미리 확보했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이 교수의 전문분야는 컴퓨터 비전과 영상처리다. 테슬라 자율주행차의 심장인 오토파일럿팀만 해도 컴퓨터 비전 전공자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교수는 “컴퓨터 비전은 2012년 딥러닝 기술이 나온 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며 “누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느냐의 경쟁이기 때문에 우리도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했다.
장병탁 교수도 “투자나 산업 규모로 보면 실리콘밸리에 비해 우리 수준은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이제라도 제대로 투자하고 지원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 플랫폼에 들어가는 인공지능 경쟁은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일본이 ‘페퍼’라는 인지로봇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면서 로봇 플랫폼 분야에서 앞서가기 시작했다”며 “한국은 추격자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동휘/황정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기업의 환율관리 필수 아이템! 실시간 환율/금융서비스 한경Money
[ 무료 주식 카톡방 ] 국내 최초, 카톡방 신청자수 33만명 돌파 < 업계 최대 카톡방 > --> 카톡방 입장하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