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경제인에 관한 성찰

입력 2017-10-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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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넛지 이론'
선택에 드는 시간 줄이려는 합리성으로 봐야
본능 따르는 합리성은 자유시장경제의 토대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행동경제학에서 개척적 업적을 쌓은 리처드 세일러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사람의 합리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는 주류 경제학이 상정하는 경제인(economic man)이, 즉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뒤에 그것들을 당혹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생명의 목표는 영속이므로 생명체들의 합리성은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선택을 지향하는 태도를 뜻한다. 40억 년 동안 환경에 적응해왔으므로 생명체들은 본질적으로 합리적이다. 비합리적 특질을 지녔다면 그 긴 세월에 경쟁에 져서 사라졌을 것이다.

거대하고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관해 생명체가 지닌 정보는 아주 적다. 유전자 속에 든 정보와 뇌에 든 정보를 합쳐도 크게 부족하다. 게다가 사람의 뇌는 긴 원시시대에 다듬어졌으므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현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다. 따라서 사람의 합리성이 늘 좋은 결과를 낳을 수는 없다. 그런 결과를 들어서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들이 비합리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천성을 진화의 관점에서 살피지 못한 단견이다.

세일러는 ‘슬쩍 밀기(nudge·넛지)’라는 처방으로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선택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 하므로 정책을 만들 때 그 점을 고려해야 성공한다는 얘기다. 선택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려는 태도는 생명체들의 합리성에서 나왔다. 비록 세일러 자신은 깨닫지 못한 듯하지만 ‘nudge’는 사람이 늘 합리적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이런 오류는 허버트 사이먼이 1972년에 제시한 ‘제약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서 비롯했다. 사이먼은 선택에 필요한 정보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사람들은 ‘최적의 해결책 대신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합리성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사람들의 궁극적 합리성을 보여준다.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 일에 쓸 시간과 에너지는 제약됐다. 따라서 덜 중요한 일에서 최적의 선택을 고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은 비합리적이다. 개체의 생존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바로 ‘최적의 해결책’이다. 사이먼과 같은 석학이 이 점을 놓친 것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먼은 ‘제약된 의사결정 비용’이라 불러야 할 현상을 ‘제약된 합리성’이라 불렀다. 하긴, 그렇게 불렸다면 그의 통찰은 ‘한계효용 균형의 원리’로 곧바로 흡수되니 사람들이 대단한 발견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사이먼과 세일러는 사람들의 궁극적 합리성을 오히려 선명하게 보여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이 선택할 때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자신만이 지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선택은 본능, 욕망, 감정과 같은 형태의 내재적 정보에 바탕을 둔다.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사회가 개인을 대신해서 선택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런 사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적 근거다. 사람의 합리성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비판은 보기보다 위험하다.

‘경제인’에 대한 비판은 방법론적으로도 단견이다. 모든 일에서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경제인은 현실에선 물론 찾을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경제인을 이상적 모형으로 만든다. 모형은 거대하고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자연히 모형은 현실과 많이 달라야 쓸모있다. 모형의 전형인 지도는 3차원 세계를 2차원 세계로 단순화한다. 지하철 지도엔 노선과 역의 상대적 위치만 나온다. 방향이나 거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 지도가 편리하다.

극도로 단순화됐다는 사정 덕분에 경제인은 기본적 모형의 자리를 누린다. 사이먼이나 세일러가 내놓은 모형은 경제인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 것들이어서 경제인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현실에 없는 완전경쟁 모형이 기본적 모형인 것과 같은 이치다.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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