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소설가 중에는 복잡한 삶의 배경이나 순탄치 않은 성장 과정을 거친 이들이 많다. 소설은 경험이 많이 반영되는 장르인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고달프면 그만큼 스토리가 생겨나니 한때의 고난이 언젠가 축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폴란드 태생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니는 조지프 콘래드는 러시아 속국이던 폴란드에서 1857년에 태어났다. 반정부 운동에 가담한 부모의 전력 때문에 5세 때부터 부모를 따라 유배생활을 해야 했고 8세 때 어머니가, 11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고아가 된 콘래드는 외삼촌의 보호 아래 자랐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실질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독립투사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폴란드어로 교육받고 프랑스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광범위한 독서를 하였으며 그중 항해와 탐험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
16세에 학업을 중단한 콘래드는 선원이 되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했다. 프랑스에서 수습 선원으로 4년을 보낸 뒤 영국으로 건너가 23세와 27세에 각각 이등항해사와 일등항해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29세에 영국으로 귀화한 콘래드는 그해 11월에 일반 선장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누비며 선원생활을 하다가 37세에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영문학 작가로 평가받는 콘래드는 해양소설의 대가로 불린다. 대표작인 『로드 짐』은 동남아시아 항해 얘기를 담았고, 『노스트로모』는 1876년의 서인도 제도 항해를 바탕으로 했다. 해양소설 외에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 영어를 배웠지만 영문학에서 스타일리스트로 꼽힐 만큼 뛰어난 문장을 구사한다.
유배나 다름없는 근무환경
중편소설 「발전의 전초기지」는 해양소설은 아니지만 바다를 잘 알고, 여러 대륙을 많이 다녀본 콘래드의 경험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탄생한 소설이다. 과거 선진국들은 힘을 앞세워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불공정 거래를 일삼았다. 그런가하면 낯선 나라로 파견된 자국인들도 고통을 받았다.
「발전의 전초기지」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설치된 교역거래소에서 근무하게 된 두 백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국에서 보급품을 실은 배는 6개월에 한 번 온다. 그들을 돕는 아프리카인 직원이 있지만 모든 게 낯선 상황이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돌발적인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케이어츠와 카알리에는 권총을 갖고 있다.
문명사회에 살던 사람이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환경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 둘은 서로 의지하면서 무척 친밀하게 지낸다. 하지만 단조롭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차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인근 부족과의 갈등 때문에 물자 지원도 받지 못하고, 본국에서 온다던 보급선도 점점 늦어진다. 남은 건 쌀과 커피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을 위해 비축해둔 설탕을 먹자는 카알리에의 요청을 케이어츠가 거절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총격사건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무장하지 않은 카알리에가 사망하자 케이어츠는 아연실색한다. 뒤늦게 도착한 보급선에서 내린 회장이 발견한 것은 자살한 케이어츠의 흉한 몰골이었다.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현지인들이 아프리카 상아의 수집과 취득 과정을 주도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유배나 다름없는 근무환경에 처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백인들. ‘지구의 어두운 구석까지 빛과 신앙과 상거래를 가져가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싶었던 그들은 ‘몰골이나 성미가 차츰 변해가는 것’을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고 ‘야만인’이 되어간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 이를테면 사랑, 미움, 믿음, 심지어는 의혹까지도 없앨 수 있지만 우리가 삶에 집착하는 한 두려움만은 없앨 수가 없다’는 두 사람의 절규는 사실상 모든 사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식민시대는 지났지만 「발전의 전초기지」는 우리가 함부로 대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자행되는 일들, 사람 사이의 믿음과 두려움 등에 대해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이근미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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