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KEB하나·기업·농협
"모뉴엘 실적조작에 가담, 실제 300배 가격에 구매"
피해 보상 규모는 미지수…이겨도 2600억만 회수 가능
무보와 소송 증거자료 위해 소멸시효 만료 직전 제기한듯
[ 이현일 기자 ] 국민, KEB하나, 기업, 농협 등 4개 은행이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에 가담한 미국 유통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모뉴엘이 홈시어터PC, 로봇청소기 등을 수출했다고 속여 3조원대의 대출을 받은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파산한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내에선 은행들이 모뉴엘에 수출보증을 해준 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3600억원대의 수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업체들도 사기에 가담”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 KEB하나, 기업, 농협 등 4개 은행은 미국의 PC부품 전자상거래 업체인 뉴에그와 부품 도매업체 ASI 등을 상대로 지난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지방법원에 2억3000만달러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개 은행은 뉴에그와 ASI 등 미국 유통업체들이 모뉴엘과 짜고 실제보다 최고 300배나 되는 가격으로 홈시어터PC를 주문해 모뉴엘이 매출채권을 담보로 국내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해줬다고 주장했다. 은행들은 “모뉴엘 사기에 뉴에그와 ASI도 가담했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며 소송 이유를 밝혔다.
은행들은 모뉴엘이 이 같은 방법으로 연간 1조원 이상의 수출 실적을 만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07년부터 총 3조원대의 대출을 일으켜 돌려막기를 하고 일부는 빼돌렸다고 보고 있다. 모뉴엘은 2014년까지 허위서류뿐만 아니라 금품로비까지 벌여 무보의 수출보증을 받은 덕분에 대출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10여 개 은행이 피해를 봤다는 게 은행들의 판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 업체들이 턱없이 비싼 가격에 제품을 주문한 것은 모뉴엘이 이를 되사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며 “브로커와 유통업체의 공모관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6000억원 피해 누가 책임지나
그러나 금융계 일각에서는 소송 제기가 뒤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들이 보증에 의존해 대출해주고 수출보험금을 받는 데만 신경 쓰면서 다른 대책을 찾는 데는 소홀했다는 얘기다. 법정관리 신청 당시 은행권에서 총 6768억원에 달하는 대출이 회수되지 않았으나 은행들은 보증부 채권인 3616억원에 대해서만 무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 1심에서 농협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승소했고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은 보험금 일부만 지급받았다. 국민은행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은행들은 모뉴엘 법정관리 신청일인 2014년 10월20일에서 소멸시효 3년이 만료되기 직전에 소송을 냈다”며 “무보와의 소송에 보전조치를 했다는 사실을 증거로 쓰기 위한 게 아닐까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보가 보험금을 내주고 난 뒤 미국 소송을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은행들이 미국 법원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으면 2600억원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피해액 6768억원을 모두 환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모뉴엘 제주사옥 등을 경매하고 임직원이 빼돌린 재산도 일부 회수했지만 소액에 불과하다. 사기에 가담한 의혹을 사고 있는 중국 업체들로부터도 손해배상을 받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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