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장학금 받으며 곧게 잘 자라 감사”연락처도 안 남기고 떠나
최근 수년간 부산대학교에 황혼기에 접어든 할머니들이 평생 모은 큰 재산을 나눠주고도 ‘절대 익명’을 요구하는 아름다운 기부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쌀쌀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늦가을 날인 지난달 25일 오전, 부산대학교 발전기금 사무실에 한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갑자기 찾아와 하얀 봉투를 하나 불쑥 내밀며 “학교 발전을 위해 써 달라”고 했다.
발전기금 사무실 관계자가 봉투를 열어보니 ‘1000만원짜리 수표’ 1장이 들어 있었고, “이게 무슨 돈이냐?” “할머니 존함과 연락처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걸음에 돌아가려고 했다.
○ 부산대 관계자가 “그렇다면 딱 차 한 잔만이라도 하시고 가십시오”라며 끈질기게 설득하자, 할머니는 의자에 앉았고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을 조금 털어놨다.
하지만 부산대는 끝까지 그 할머니로부터 이름도, 연락처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돌려보내야만 했다. 할머니가 끝까지 밝히기를 거부한 것이다.
부산대 발전기금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그 할머니의 아들은 부산대를 졸업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몸도 편찮아 힘들게 살아가느라 하나뿐인 아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애가 공부를 잘 해서 부산대에 입학하고, 돈이 없어 대학입학금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도와줬다”며 “대학 가서는 학비도 내내 아들이 스스로 과외수업 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었고 엄마한테 생활비까지 보태준 착한 애”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어 “부산대에서 장학금도 주고 잘 가르쳐줘서 참 감사하다. 우리 아들이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긋나지 않고 잘 성장해서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친구도 많이 떠나고 산책으로 소일거리를 삼고 있어 아들이 준 용돈을 모아둔 것인데 다른 데 별로 쓸 데가 없으니 아들의 모교 발전을 위해 주고 싶어서 왔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나이나 전공학과는 물론 본인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일체 남기지 않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따로 쓸 데도 없으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공부하느라 힘든 귀한 자녀들에게 작으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당부말씀만 남기고 배웅도 거절하며 홀연히 떠났다.
부산대는 할머니의 기부금 1000만 원을 장학금 조성에 활용할 계획이다.
2015년 말에는 부산대 재학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30여 년간 어렵게 모은 돈 1600만 원을 부산대에 전액 기부한 ‘기초생활수급 할머니’의 아름다운 기부가 있었다.이어 올해 6월에는 경남 창원에서 거주해오다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이모 할머니(87)가 주변 지인을 통해 평생 모은 재산 1억1000만 원을 기탁해오는 등 황혼기에 접어든 할머니들이 절대 익명을 요구하며 ‘부산대 사랑’을 계속 보내주면서 훈훈한 감동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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