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춘호 기자 ] 지난해 벨기에에서 열린 권위 있는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소형 모터가 발견됐다. 이 대회 참가자인 펨케 반덴드리슈의 자전거에 숨겨진 모터였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기계 도핑’이라고 불렀다. 자전거 바퀴나 차체에 몰래 모터를 장착해 인위적으로 스피드를 높이도록 한 것이다. 약물 복용에 의한 부정보다 더욱 큰 스포츠 비리였다. 2015년 세계 최대 자전거대회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 크리스 프룸도 자전거에 소형 모터를 달았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전기에너지를 기계를 움직이도록 하는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게 모터다. 일반적으로 700~800g이나 35㎜ 이하의 모터를 소형모터로 분류한다. 소형 모터는 주문형이 많기 때문에 주문형 모터라고도 한다. 소형 모터는 50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그만큼 생산 자동화가 어렵다. 소형 모터가 본격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가전 제품이 나오면서다. 가전제품이 갈수록 작고 가벼워지면서 소형 모터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디오나 가전제품에 소형 모터는 필수품이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소형 모터는 더욱 인기를 끌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한 모터 등도 선보였다. 휴대폰은 극소형 정밀 모터 기술의 극치를 보였다. 휴대폰에는 카메라를 움직이는 모터를 포함해 4~5개의 소형 모터가 들어간다.
사물인터넷(IoT)이나 드론 로봇에도 소형 모터는 생명줄이다. 드론에만 8개 이상의 소형 모터가 들어간다. 로봇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로봇의 관절마다 소형 모터가 필요하다. 한 대의 로봇에 들어가는 모터는 특수모터를 포함해 수십 개다. 물론 최근 소형 모터의 화두는 전기차다. 팬이나 와이퍼 등 각종 장치에 포함되는 모터를 합쳐 10개 이상이 필요하다. 타이어 하나하나에 모터가 들어가는 기술도 현대자동차 등이 개발했다. 모터가 바퀴를 직접 구동한다. 중간 과정에서 동력 손실도 없고 관련 부품이 최소화된다. 이제 소형 모터는 초고속 초정밀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것을 받쳐주는 고난도 모터가 나오고 있다. 1분에 1만 번 이상을 회전하는 모터도 선보인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이 넘는 소형 모터 전문기업 니혼덴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소형 모터의 세상이 온다고 확신하고 사업을 밀어붙였다”고 했다. 이 회사는 올해도 전년 대비 15%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소형 모터의 세상이다. 아니 한 가지 부품으로 승부수를 띄운 기업들의 세상이기도 하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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