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평등주의서 벗어나 성과 내는 교수를 보상
진정한 연구형대학으로 발전하고
새로운 일자리 만드는 당사자 돼야"
김도연 < 포스텍 총장 >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2000달러가 조금 넘는 개발도상국이었다. 그 무렵 전통적 교육기관이었던 우리 대학들도 ‘연구중심’이란 이름을 내걸며 새로운 지식 창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연구 성과를 평가의 주요 잣대로 하는 세계 대학랭킹에서 서울대가 톱100에 처음 포함된 것이 2005년이었는데, 요즘은 다섯 개 정도 대학이 여기에 이름을 올린다. 서울올림픽과 내년 평창올림픽 사이의 지난 30년간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연구중심대학’은 말 그대로 지식을 만들어 내는 연구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이는 결국 대학원이 활성화된 대학이다. 즉, 대학원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대학이며, 특히 연구라는 나무의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북적거리는 대학이다. 그런데 연구 방법을 가르치는 대학원 교육은 학부 교육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토론하며 더불어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수되는 것이기에, 대학에서의 연구는 결국 미래 연구자를 길러내는 중요한 교육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중심은 항상 교육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연구중심’은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부적절한 이름 때문에 “연구가 교육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다”는 그릇된 가치관이 우리 대학 사회에 일부 자리잡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에서는 연구중심대학 대신 ‘연구형(型)대학’이라 칭하며, 서양에서는 ‘리서치 오리엔티드 유니버시티(research oriented university)’ 혹은 단순히 ‘리서치 유니버시티(research university)’라 부른다. 우리도 연구중심대학보다는 연구형대학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
연구형대학의 특성은 한마디로 치열한 경쟁이다. 연구비 없이는 활발한 연구가 불가능하므로 이를 획득하기 위해 교수들은 경쟁을 치른다. 대학 간에는 학생이자 동시에 연구인력인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있으며, 이를 위해 대학은 다시 교수 간 연구 경쟁을 유발해 그 명성을 높여야 한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교수에게 파격적인 연봉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교수에게 주어지는 연구실 크기마저도 성과에 따라 차이를 두는 곳이 바로 연구형대학이다.
연구형대학의 교수는 스스로가 창의력 있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연구비 획득을 위한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대학원생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그들의 앞길을 터주는 멘토로서의 능력, 그리고 학부 학생들의 학문적 동기를 유발시키는 능력과 교육적 열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소속 대학 발전에도 기여하면서 해당 학문의 대중 인지도 제고를 위한 사회 활동까지 요구된다. 연구형대학은 이렇게 슈퍼맨 같은 교수들로 구성되는데, 이는 모든 면에서의 치열한 경쟁으로 그런 능력을 지닌 교수만 해당 대학에 계속 남아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연구형대학들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수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 교수 간 연구 경쟁을 유발하고 이를 촉진하는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빼어난 성과를 내는 교수에게 특별하게 보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학 사회에 팽배해 있는 여러 측면에서의 무차별 평등주의를 탈피하지 않는 한 진정한 연구형대학을 이루기는 어렵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치열한 내부 경쟁 없는 대학이 외부로 나가 경쟁력을 지니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연구형대학에는 21세기 접어들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책무가 주어졌다. 이는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재와 연구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창업(創業), 창직(創職)과 연계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더욱 직접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 젊은이를 위한 일자리 창출은 우리 미래 사회의 안정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이를 위해 정부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진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형대학은 인재 가치, 지식 가치, 그리고 사회경제적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가치창출형 대학으로 한 걸음 더 진화해야 한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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