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부터 들어온 얘기다. “지금은 ?시(guanxi) 같은 것들이 작동하지만 앞으로는 없어질 것이다.” 심지어 “요즘 중국에서는 영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도 한다. 단면만 보고 말하는 것이다. 盲人摸象(맹인모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은 자체만으로는 나쁘지 않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고, 자기 것을 정리해서 공유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토론을 통해 전체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
모를수록 자신 있게 말한다
이런 차원이라면 코끼리 만지기는 의미가 있다. 내가 만져본 코와 다른 이들이 만져본 다리, 귀, 몸통, 그리고 꼬리 등을 잘 조합해내면 코끼리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다. 중국이라는 그림도 그럴 것이다. 전제는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우기지 않는 것’이다. 내가 만진 부분이,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전체요, 본질이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오류가 생긴다. 술좌석에서의 얘깃거리는 될 수 있겠지만 이런 단편적인 지식을 주장하면 안 된다. 이런 이들이 조직과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을 수록 피해는 그만큼 커진다.
“중국은 이제 법치다. ?시 등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인간적인 유대감, 인적 관계는 중요하다. 중국의 ?시에 대해 개방적 사고가 필요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시마저 없으면 재앙이 된다. ?시 무용론(無用論)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시가 있어 봤는지? ?시를 사용해 봤는지? 상대방이 ?시로 괴롭히는 것을 당해봤는지?” 중국과의 교류에서 ?시는 핵심 키워드다. “?시를 제대로 이해 못 한다” 또는 “?시가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중국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관계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
한편 제대로 된 절차와 규정 등을 확인도 안 하고 “나는 ?시가 있다”며 무조건 주위의 ?시에게만 의지하고 판단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시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에만 갇힌 일처리 방식은 옳지 않다. 언젠가 중국의 대형기업과 심각한 갈등이 생겼다. 양측의 최고위층이 만나야 하는데,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았다. 20여 년 전이라 항공편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답은 전용기를 띄우는 것이었다. 준비기간은 촉박했으나 뜻밖에 일사천리로 중국 내의 모든 수속을 마쳤다.
문제는 내부였다. “그룹의 최고 중국전문가들도 못 푼다고 했다. 괜히 큰소리 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포기하라”는 그룹의 지시가 왔다. 부서 상사들도 말리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 중앙 부서 승인뿐만 아니라 중국 내 공항 담당자들하고도 연락이 다 됐는데, 황당했다. 일을 추진하던 중국인 직원과 상의했더니 “규정도 문제 없고 당국에서도 허락했는데 뭐가 문제죠?”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결국 우리의 전용기는 긴박한 일정을 순조롭게 마쳤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미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가짜가 진짜를 쫓아낸다'
중국에 주재한 지 불과 몇 년 안 된 필자의 팀은 최초로 ‘민간 전용기’를 중국에 띄웠다. ?시가 없더라도 중국에서 일을 해낼 때가 있다. ?시가 중국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환경 및 분야에 대응할 수 있는 열린 시각을 갖춘 중국전문가 그룹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이라는 현장을 도외시하는 紙上談兵(지상담병: 책상물림)은 부족하다. 이론적으로 딱딱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현장에서의 경험은 그럴수록 중요하다. 중국어 자료를 해독 못 하고, 중국인을 만나지도 않으면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적지 않다. 自欺欺人(자기기인: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다)하는 도덕불감증이다.
상상(想像)이라는 단어는 코끼리(象)를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코끼리를 머릿속에서 그려낸 것(想)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이런 이들이 주류가 되면 중국이라는 코끼리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존재가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다. 중국 근무를 오래한 친구가 ‘신(新)그레샴의 법칙’을 소개하며 한탄한다. “나쁜 전문가가 좋은 전문가를 쫓아낸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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