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변호사 자살 이은 참극
변호사 상담 중 4층서 뛰어내려 병원 옮겼지만 끝내 회복 못해
동료들 "변 검사 억울해 했다"
"환부 도려내는 수사해야 하는데 둔기 휘두르는 수사 아닌가" 지적
"무차별 수사방식 되돌아 볼 때"
[ 고윤상 기자 ] 이명박 정부 당시 일명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현직 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투신해 세상을 등졌다. 피의자가 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에 검찰조직 전체는 침통하면서도 격앙된 분위기다. ‘무차별적으로 진행 중인 적폐 수사를 돌아볼 때’라는 목소리가 법조계 전반에서 높다.
6일 오후 2시30분께 ‘댓글 수사’ 은폐 과정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48·사법연수원 23기)가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 건물 4층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불과 30분 앞두고 일어난 참변이다. 변 검사는 인근 대형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변 검사는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 정점식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아인에서 상담받던 중 ‘화장실에 가겠다’며 나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국정원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된 변 검사는 대구 심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공안 검사’ 출신이다. 2013년 검찰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꾸린 ‘현안 태스크포스(TF)’ 구성원이었다.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이제영 대전고검 검사 등과 함께 허위 서류 등을 비치한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지난 2일 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댓글 수사 관련 연루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1주일 전인 지난달 30일에는 검찰의 댓글 수사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꾸렸다는 의혹을 받은 국정원 직원 정모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중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꼽힌다. 명예 실추도 중대 사유다. ‘소년급제’해 검사로 평생을 일하다 한순간에 추락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주변인이나 가족 등을 언급하며 압박할 때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죽음으로써 결백을 주장하는 사례도 많다.
변 검사의 경우 혐의인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는 최대 ‘징역 5년형’으로 중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국정원 댓글 수사’의 과도한 몰아붙이기가 극단적 선택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변 검사와 같이 근무한 공안 검사 출신 변호사는 “차분한 성격인 변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수사 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도 “변 검사는 윤 지검장 동기”라며 “환부만 도려내는 날카로운 수사를 해야 하는데 둔기를 휘두르는 수사를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조직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발 적폐 수사 지시를 앞뒤 가리지 않고 강행하는 무리수가 사태를 불렀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지방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무리한 수사가 참사로 이어졌다”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수사지휘자인 윤 지검장은 물론이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변 검사가 많이 억울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공안 검사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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