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준천정위성 4기 띄워 독자 자율주행기술 확보
무인 제설차량 등 활용 계획
중국·러시아 등도 독자 GPS 개발 나서
한국은 2040년경 선보일 듯
[ 박근태 기자 ] 일본 미쓰비시전기는 지난 8일 도쿄에서 ‘소사이어티 5.0 슈퍼스마트 사회’ 발표회를 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 내비게이션의 오차는 수평 방향으로 불과 6㎝, 수직 방향은 12㎝에 불과하다. 민간이 쓰는 내비게이션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쓰비시전기가 이처럼 한층 정교한 내비게이션 시스템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일본이 쏘아올린 4기의 준(準)천정위성 시스템(QZSS)이 있다. 일본이 2003년부터 연간 100억엔을 들여 쏘아올린 이 위성은 미국이 제공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본의 독자적 자율주행기술 확보부터 안보 문제까지 전방위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판 GPS 등장
미국 국방부가 1972년 개발한 GPS는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 24개가 보내는 신호를 이용해 위치와 시간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정밀무기뿐 아니라 자동차, 항공기, 선박의 길잡이 노릇은 물론 휴대폰에도 사용된다. GPS 위성은 지구 어디서든 최소 4기가 보인다.
하지만 높은 건물이 많은 도심에선 전파가 닿지 않는 음영 지역이 생겨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한다. 긴 도로 주변에 20~30층 건물이 병풍처럼 서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는 GPS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음영지역 중 하나다. 미국 정부는 군사용 GPS와 달리 민간에는 최대 수십m 오차를 갖는 신호를 쏜다. 차로를 이탈하지 않고 달려야 하는 자율주행차는 오차가 몇㎝ 이내여야 해 보완할 방법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2003년 위성항법보강체계(JRANS)라는 계획을 세웠다. 아예 일본 열도 3만2000~4만㎞ 상공에 항상 떠 있는 정지위성처럼 GPS 위성을 띄워 오차를 줄이고 정확한 위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머리 위 하늘 정중앙을 뜻하는 ‘천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말로 ‘미치비키(길잡이)’로도 불리는 이 위성은 2010년 9월 첫 위성이 발사된 이후 지난달까지 4호기가 쏘아올려졌다. 네 기의 위성은 일본과 태평양, 호주 상공을 ‘8’자 궤도로 돌며 한 기는 언제나 일본 열도 상공에 머무르게 운영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세 기만 운영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네 기의 위성을 추가해 정확도를 더욱 끌어올리기로 했다.
◆자율주행, 농업 무인화 파급효과 커
준천정위성은 미국의 GPS 신호를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 기업과 기관들은 준천정위성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꿈 같은 활용 계획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위성 데이터를 제공하는 홈페이지까지 열며 기업들의 활용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 말 오키나와에서 준천정위성이 쏘는 신호를 받아 달리는 자율주행버스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이 버스는 오키나와 중부 두 개 마을을 잇는 20㎞ 구간을 준천정위성이 쏘는 신호를 활용해 도로를 달린다. 차로 변경과 정차 과정에서 오차를 몇 ㎝ 이내로 줄였다.
일본 동일본고속도로는 자율주행 제설 차량을 개발해 홋카이도 지역에서 운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눈이 많이 오는 도로를 가장 많이 관리하고 있다. 관리하는 도로 길이는 3900㎞로 이 중 60%에 해당하는 2500㎞의 연중 적설량이 1m가 넘는다. 히로세 히로시 사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브리핑에서 “기존 GPS는 최대 10m까지 오차가 났지만 준천정위성을 활용하면 몇 ㎝까지 정확한 조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외에 중국과 인도가 독자 위성항법체계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의 GPS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위해 GPS 오차를 뛰어넘는 항공용 위성 기반 위치보정시스템(SBAS)과 육상용 실시간이동측위(RTK) 기술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GPS를 어느날 갑자기 끄면 차량과 항공기, 선박은 물론 첨단 유도무기도 무용지물이 된다. 허문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항법팀장은 “위성항법 기술은 기존 교통수단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드론 등 여러 영역에서 파급효과가 크다”며 “한국의 독자적인 위성항법시스템은 2040년께가 돼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본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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