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49조 실탄' 장전…기업금융 시장서 은행과 한판 붙는다

입력 2017-11-13 19:22   수정 2017-11-14 05:01

한국판 '초대형 IB' 출범
금융위, 5개 증권사 '초대형 IB' 지정

증권사 '천수답 경영' 마침표
자기자본 200%내 어음 발행
조달 자금 50% 기업 투자
부동산 투자 30%까지 가능
글로벌 IB처럼 수익 다변화

한투증권만 어음발행 인가
정부 "4개사는 계속 심사…순차적으로 인가할 예정"



[ 김병근 기자 ]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고객예탁금(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긴 돈)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없다. 고객 돈을 받아 채권을 대신 운용해주는 환매조건부채권(RP)과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되면 달라진다. 자기자본의 200% 이내에서 어음을 발행, 자금을 조달해 기업과 부동산 등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한국증권학회장을 지낸 김명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초대형 IB의 모험자본이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되면 혁신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금융 시장 집중 공략”

초대형 IB는 정부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어음발행, 기업 대상 환전 등 신규 업무를 허용해주기로 한 사업이다. 정부는 초대형 IB를 육성하기 위해 2011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2013년 국회를 통과했다. 자기자본 규모(3조·4조·8조원)가 커질수록 신규 업무를 많이 허용해주는 내용을 담았다.

초대형 IB로 지정되고 단기금융업(발행어음업무)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두 배 한도에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어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50%는 기업금융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중견·중소기업 대출, 회사채 및 주식 인수를 비롯한 기업금융 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초대형 IB를 신청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 업무 인가에 대비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투자처를 상당수 확보했다”며 “발행 잔액 대비 연 1.45%포인트(투자수익과 발행어음 비용 차이)의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에는 최대 30% 투자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같은 모험자본 투자가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미국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처럼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회사채·주식 인수 및 인수합병 자문(16%), 직접투자·대출(15%), 자산관리(15%), 주식·채권 중개수수료(9%) 등을 통해 부문별로 고른 수익을 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의 주식·채권 중개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2015년 기준)로 높아 주식시장 상황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시장 파이 커진다”

초대형 IB는 5곳이 지정됐지만 어음 발행은 유일하게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시작한다. 이 증권사는 올해 1조원을 시작으로 내년 4조원, 2019년 6조원, 2020년 8조원 등 순차적으로 발행 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다.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나머지 4개사까지 인가를 받으면 5개 초대형 IB가 조달할 수 있는 모험자본 규모가 최대 49조원가량(5개사 자기자본의 2배)으로 불어난다.

한국투자증권을 뺀 4개 증권사는 각각 다른 이유로 금융당국의 인가가 늦어지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옵션상품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 제재 수위가 결정된 뒤 인가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NH투자증권은 자본건전성이 발목을 잡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증권사의 채무보증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3조6000억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KB증권은 흡수합병한 현대증권이 과거 불법 자전거래로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이력 탓에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삼성증권은 대주주(삼성생명)의 특수관계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때문에 심사가 중단됐다. 금융위원회는 4개 증권사에 대한 심사가 끝나는 대로 추가 인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금융투자협회 고위 관계자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는 별도 제약 없이 인가해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심사도 늦어지고 깐깐해진 것 같다”며 “‘밥그릇 빼앗기’가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과 증권업계 간 ‘영역침범 논쟁’에 대해 “은행권에서 초대형 IB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시해 준다면 동일하게 노력할 것”이라며 “현시점에선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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