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냉혹함 증언하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교훈
'약자 보호' 울타리 돼준 다자(多者) 규칙의 시대 가고
'힘' 앞세운 협상의 시대 도래"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이룬 프로이센 왕 빌헬름은 독일제국 황제 즉위식(1871년 1월)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치렀다. 나폴레옹 3세를 격파하고 보불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직후였다. 그가 ‘통일 독일제국’ 선포 장소로 ‘프랑스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쟁에서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를 만방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반세기 전 독일 땅이 나폴레옹(1세)에게 유린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해체 당한 굴욕을 그렇게 응징했다.
프랑스는 이 수모를 잊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패전국 독일과의 강화조약(1919년 5월) 장소를 베르사유 궁전으로 특정하고, 가혹한 배상을 관철시켰다. “이제 정산의 시간이 왔다.” 조르주 클레망소 당시 프랑스 총리는 그렇게 말했다. 다시 독일이 복수할 차례를 기다렸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프랑스를 점령하고, 괴뢰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되갚았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지만, 패자에게는 더 참혹하다. 승자가 패자를 얼마나 능욕할 수 있는지를 베르사유 궁전은 온몸으로 증언한다. 전쟁은 국가(또는 진영) 간 이해관계 충돌과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지만 비용이 엄청나다.
그런 소모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탄생한 게 유엔을 비롯한 국제·다자(多者)기구였다. 만국 공통의 규정(rule·룰)을 제정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가라앉혔다. ‘룰이 작동하는 세상’은 힘이 약한 나라들에 복음이었다. 강대국들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자 룰은 강자(强者)가 더 많이 갖는 것을 방해했다. ‘법보다 주먹’의 유혹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주먹’을 점잖게 표현한 게 ‘협상’이다. 철두철미 힘 있는 쪽이 주도하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게 협상이다.
지난주 도쿄와 서울, 베이징, 하노이, 마닐라는 ‘룰의 시대’가 가고 ‘딜(deal·협상)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들 도시를 차례로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위한 일자리’를 순방 주제로 삼고 각국 정상들과 담판을 벌였다. 최대 무역역조 국가인 중국을 방문해 283조원 규모의 무역협정을 선물로 따내고는 “중국의 무역 불공정을 비난하지 않겠다”는 립서비스를 날렸다.
북한 핵 위협을 해소할 안보이슈가 화급한 한국을 방문해서도 가장 먼저 입에 올린 말은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이었다. 대한(對韓) 무역역조를 빌미로 다량의 미국산 첨단무기 수출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비롯해 미국의 경제적 실익을 최대로 끌어올릴 청구 목록이 첩첩이 쌓여 있다. 기존의 통상규칙을 지켜내겠다고 호언했던 한국 대표단이 “그렇다면 FTA 자체를 폐기하겠다”는 미국 측의 서슬에 꼬리를 내리는 망신을 당한 터다.
중국의 완력 시위는 더욱 노골적이고 막무가내다. 국제사회의 상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사드 보복으로 한국을 몰아붙이더니 산더미 같은 ‘보복 중단 청구서’를 보내왔다. 사드 추가 반입과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참여를 않겠다는 ‘3불가(不可) 천명’은 즉각 국제사회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하노이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에게 졸렬했던 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유감 표명조차 없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은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등의 적반하장 공세를 편 것으로 중국 언론은 보도했다.
‘룰’ 대신 ‘딜’이 득세하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유감스럽게도 세계가 그런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넘쳐난다. 백년대계의 안목으로 국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해졌다. 부족한 완력을 보완할 외교 통상 등의 협상능력 보강이 절실하다. 누구도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나라의 품격과 문화를 끌어올리는 일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은 숱한 패전에도 살아남았지만, 우리는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을 망국(亡國)과 함께 훼절당하거나 상실해야 했다. 그런 수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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