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사업 '키우고 새로 밀어넣고'…또 반복된 예산심사 '적폐'

입력 2017-11-15 19:26  

국회 상임위 예산심사 '뻥튀기'

국회 상임위 9곳서 8조6000억 증액
섬유패션산업 활성화 2배·공단 재정비 5배↑
예결위서 '칼질' 불가피…정치적 거래 불보듯



[ 오형주 기자 ]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묻지마 증액’ 행태가 올해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정부가 지역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줄여 국회로 넘긴 만큼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이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가 노골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짜놓은 예산보다 두 배 이상 뻥튀기된 사업이 속출하는가 하면, 아예 예산안에 없던 사업을 새로 끼워 넣는 사례도 나온다.

상임위의 선심성 예산 증액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주고받기식 예산심사’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예산 마구 늘리는 상임위

한국경제신문이 15일 국회 예결위에 제출된 9개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결과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모든 상임위에서 지출 요구액이 정부안보다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상임위가 요구한 지출 증가액 규모만 8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출 요구액 증가는 지역과 관련한 산업진흥·사회간접자본 사업이 많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등의 심사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증액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예산액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사업이 상당수였다. 대부분 상임위 지역구 출신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예산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섬유패션산업 활성화 기반 마련’ 사업은 원래 213억원이 책정돼 있었지만 산업위 심사에서 474억원으로 261억원 증액됐다. 부산패션비즈센터 건립(27억원) 등 지역예산을 늘려달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빗발쳐서다. ‘생활산업 경쟁력 강화’ 예산은 전북 익산 귀금속보석산업 고도화 지원 등의 명목으로 당초 10억원에서 55억원으로 5배 넘게 급증했다. 탄소산업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는 경북 구미와 전북 전주에 투입될 ‘탄소산업기반조성’ 예산 역시 65억원에서 139억원으로 증액됐다.

‘바이오나노 개방형생태계조성 촉진’ 사업은 충북 오송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에 시험시설 도입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45억원에서 105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국토위는 국토교통부의 ‘노후공단 재정비 지원’ 예산을 97억원에서 470억원으로 5배 가까이로 늘렸다. 여기에는 대구산단 기반시설 공사비(113억원), 부산 사상공단 도로 확장(61억원) 등 지역별 요구가 촘촘히 들어갔다. 대구 안심~하양 간 복선전철 예산은 291억원, 부산 사상~하단 간 도시철도는 220억원 늘었다.

◆예결위는 ‘주고받기식’ 감액

정부 예산안에 없던 지역사업을 새로 편성하는 행태 역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국토위는 전북 지역에 들어설 새만금개발공사 설립을 위해 510억원을 신규 편성했다. 당초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새만금개발공사 설립법안을 대표 발의한 조정식 국토교통위원장 등의 의지에 따라 새로 들어간 것이다. 경북 상주에 있는 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의 부지 매입(301억원), 대구산업선 철도 건설(172억원) 등도 정부 예산안에 없던 사업이다.

선심성 증액의 결과 산업위는 내년도 산업부 세출예산을 정부안 7조7693억원보다 7%(5451억원) 늘어난 8조3144억원으로 편성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은 정부안(3조3143억원)보다 무려 20.7%(6881억원) 늘려 잡았다. 국토위는 당초 15조9054억원이던 국토부 예산을 14.7%(2조3450억원) 증액했다. 항만 등 SOC 비중이 높은 해양수산부 예산도 12.1%(5390억원) 늘었다.

물론 이렇게 상임위에서 뻥튀기된 예산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하면 상임위가 대폭 부풀린 증액안을 내놓고, 예결위가 다시 깎아내는 예산과정이 올해도 되풀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임위 예산안이 1~2주 내로 예결위 조정소위(감액소위) 등의 ‘칼질’을 거쳐 대폭 감액되는 ‘롤러코스터식 예산 편성’이 펼쳐진다는 얘기다. 상임위가 증액한 예산을 ‘밀실 소위’가 깎는 과정에서 소위 ‘쪽지예산’이 난무하고, 여야 간 또는 지역 간 정치적 거래가 횡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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