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진과 액상화 현상

입력 2017-11-19 18:02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964년 6월16일 일본 중북부 니가타현에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했다. 강변 아파트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됐다. 인근 석유 저장소도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학계는 “지반이 액체 상태로 물렁해지는 액상화(液狀化) 현상 때문에 피해가 컸다”고 발표했다.

액상화는 1953년 일본 학자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지진 때 지반 침하와 건물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강한 진동으로 땅과 지하수가 합쳐지면서 지반이 반죽처럼 물러지는 현상이다. 흙·모래가 지표로 분출되거나 물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1964년 알래스카, 1976년 중국 탕산(唐山),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도 액상화 때문에 희생자가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4~17세기 지진 때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1643년에 ‘부산 동래 쪽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고, 경상도 합천의 초계에서는 마른 하천에서 탁한 물이 솟아 나왔다’, ‘울산에서 지진이 발생했는데 마른 논에서 물이 샘처럼 솟았고, 물이 솟아난 곳에 흰모래가 나와 1~2말이 쌓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액상화 현상을 국내 전문가들이 실제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대 연구팀은 지난 15일 지진이 발생한 포항 지역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액상화 흔적을 100여 곳이나 발견했다. 지진 발생 당시 “진앙 주변 논밭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아올랐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진앙 주변 지표에서 액상화 현상 중 하나인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와 머드 볼케이노(진흙 분출구) 30여 개를 확인했다. 평소 퇴적층에 섞여 있던 토양과 물이 지진 충격으로 흔들리면서 지표면을 뚫고 모래나 진흙을 내뿜은 결과다.

한반도 지반은 대부분 화강암이지만 포항 같은 퇴적암 기반에서는 지진 때 물과 흙이 쉽게 섞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퇴적토 위나 해안 매립지 등에 세운 건물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어제 정부가 액상화 현상에 관한 정밀 조사에 들어갔지만 최종 결과는 한두 달 뒤에나 나올 전망이다.

국내의 지진활성단층 정보를 담은 정밀지도 제작도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24년 뒤인 2041년에야 완성된다고 한다. 현재로선 피해를 줄이고 예방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지역에 건물을 지을 때에는 기초를 땅속 암반 깊숙이 고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더 큰 문제는 고질적인 부실시공이다. 철근 굵기나 설치 간격 등 건축의 기본만 지켜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어쩌면 액상화보다 더 심각한 게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다. 경주 지진 이후 강화된 내진설계의 적용 범위마저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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