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글로벌 금융위기 또 온다면 진원지는 중국"

입력 2017-11-23 19:21   수정 2017-11-24 06:59

애프터 크라이시스
루치르 샤르마 지음 /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 480쪽 / 1만8800원

수백억달러 굴리는 모건스탠리 큰손
금융위기 이후 국가별 경제 전망

2015년 중국 부채비율 250% 넘어
향후 5년간 금융시장 최대 위협

한국엔 '좋은 억만장자' 많지만
노동인구 감소·수출 둔화가 발목



[ 송태형 기자 ]
루치르 샤르마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이자 신흥시장 투자부문 총괄 대표다. 25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큰손’이다. 1990년대 초부터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등 유력지에 기고해온 경제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하다.

샤르마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과 이후를 나타내는 BC(Before Christ)와 AC(After Christ)에 비유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를 BC(Before Crisis)와 AC(After Crisis)로 표현한다. 그는 “2008년을 기점으로 세계는 내가 AC 시대라고 이름 붙인 시기에 들어섰다”며 “AC 시대에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혼란과 격변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샤르마에 따르면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AC 시대는 ‘경제 성장의 둔화’로 정의된다. 세계 경제는 인구 감소, 무역과 자금 흐름의 탈세계화, 불가피한 부채 부담 축소(디레버리징)의 필요성이라는 복합적 힘에 의해 혼란에 빠져 있다. 그는 “하지만 이런 추세를 근거로 세계 경제를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며 “어디서나 성장률 기준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더 흥하거나 망하는 국가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샤르마는 신간 《애프터 크라이시스(원제 The Rise and Fall of Nations)》에서 AC 시대에 국가별 흥망성쇠를 판단, 예측하는 10가지 ‘규칙(rule)’을 질문 형태로 제시한다. 그가 25년간 신흥시장에 투자하고 분석한 현장 경험과 연구에 기반해 뽑아냈다는 질문들은 이렇다. △생산가능인구나 인재 풀이 늘어나는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 개혁적 지도자가 있는가 △불평등이 성장을 위협하는가 △정부는 얼마나 개입하는가 △지정학적 위치를 잘 활용하는가 △경제에서 투자 비중이 늘어나는가 △물가는 안정적인가 △통화 가치는 저렴한가 △부채가 경제 성장보다 빨리 늘어나는가 △세계 언론은 그 나라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저자는 각 ‘규칙’을 구체적인 세부 평가 기준과 함께 다양한 통계 및 연구 자료, 국가별 사례 등을 들어 상세하게 설명한다. 한국도 상당한 비중으로 언급된다.

‘불평등’ 항목에선 ‘좋은 억만장자’와 ‘나쁜 억만장자’를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억만장자들의 출현은 국가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업을 토대로 억만장자가 됐는가다.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 부를 축적한 ‘좋은 억만장자’에 대해선 사회적 불만이 적다. 하지만 유전과 광산, 부동산같이 부패와 연루되기 쉬운 산업을 기반으로 하거나 정치 권력과의 결탁에 기댄 ‘나쁜 억만장자’는 성장을 가로막고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기 쉽다. 이 항목에서 한국에 대한 점수는 상당히 후하다. 저자가 주요 20개국의 전체 억만장자 재산 중 나쁜 억만장자 재산 비중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4%로 독일(1%)과 이탈리아(3%) 다음으로 낮다. 멕시코는 71%, 러시아는 67%에 이르고 중국은 27%, 미국은 10%다. 삼성과 현대 등 ‘재벌’은 생산적인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억만장자’에 속한다.

그는 “한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억만장자들이 글로벌 무대에 출현하며 기존 재벌과 좋은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회장을 예로 든다.

‘부채’ 항목에선 중국이 앞으로 다가올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가 1960년 이래 150개국에서 발생한 부채위기 30건을 분석한 결과 위기 발생 이전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4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오늘날의 중국이 그렇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007년 150%대에서 2015년 250%대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늘어난 세계 부채 57조달러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21조달러가 중국에서 증가했다.

수백억달러의 자산을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전략가이자 칼럼니스트답게 저자의 분석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예리하다. 명쾌한 문장으로 글로벌 경제를 해부하고 전망한다. 마지막 장에선 ‘10가지 규칙’을 근거로 매긴 주요 국가의 향후 5년간 경제 전망 ‘등급’을 공개한다. 등급은 ‘양호’ ‘보통’ ‘형편없음’ 세 가지다. 평가 시점은 책이 출간된 지난해 4월이다.

미국은 ‘양호’다. ‘분노한 포퓰리즘’ 위기에도 셰일오일 혁명, 제조업 투자액 규모, 실리콘밸리 기술 혁명, 꾸준히 증가하는 노동인구 비율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지목된 중국은 ‘형편없음’이다. 한국은 어떨까. 저자는 “제조업 우선주의 규칙 면에서 계속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글로벌 무역 둔화가 전통적 성장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5년 동안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등급은 ‘보통’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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