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 없으면 신제품에 '불법 딱지'…거리 무법자 된 '스마트 모빌리티'

입력 2017-11-23 20:37  

혁신성장 규제부터 깨라
(3)·끝 - 신기술에 불법 씌우는 포지티브 규제



[ 고재연 기자 ]
자율주행자동차, 바이오 3차원(3D) 프린팅 등 ‘규제 회색지대’에 놓인 신산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법적 근거가 없으면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는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전에 규제부터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부처 따로, 법령 따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당사자들은 의도하지 않은 범법 논란에 휩싸일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전동휠 등 스마트 모빌리티다. 시중에 판매되는 전동휠은 현행법상 차가 다니는 도로, 자전거도로, 인도, 공원에서 달리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기존 교통 관련 법규가 차량과 보행자 위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스마트 모빌리티는 도로교통법상 원동전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된다. 차량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만큼 인도나 자전거도로에서는 운행할 수 없다. 원동기 운전면허도 소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도로에서 운행할 수도 없다. 도로를 달리는 차는 제조사가 안전규격을 밝히는 ‘자기인증’을 거쳐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스마트 모빌리티 등은 법규 미비로 자기인증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 공원에서 탈 수도 없다. 공원 등에서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륜 이상의 바퀴가 있는 동력장치 운행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 모든 전동휠은 불법 차량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형식승인을 받은 전동휠, 전동킥보드 등 스마트 모빌리티의 운행을 허용한다. 기기별 특성에 따라 자전거도로, 차도 등에서 주행할 수 있다. 기기별로 주행 속도를 규정하고, 추월 시 음향신호를 보내는 등 세부 규정도 마련했다. 면허와 보험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해 사고 발생에도 대비하고 있다. 산업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면 업계 의견을 청취해 이른 시일 내 허용 가능한 범위와 규제 수준을 정하는 관행이 정부 내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혁파 특별법 제정해야

기술을 개발해도 각종 규제로 상용화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인 로킷은 국내 최초로 바이오 3D 프린터 인비보를 개발해 각막과 심장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로킷은 한국 대신 유럽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이오 3D 프린터를 병원에 납품하는 데는 각종 규정이 까다롭고, 언제 어떤 규제가 적용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유석환 로킷 대표는 “바이오 3D 프린팅 기술은 맞춤형 의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의약품 개발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국내에서 바이오 3D 프린터를 정착시키려면 바이오산업 규제를 전면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등의 매매 행위를 금지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3D 프린팅으로 복제한 장기를 매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무면허 의료행위 등을 금지하는 의료법 제27조에 따라 바이오 프린팅을 통한 장기 및 조직 생산, 체내 적용 과정 중 어디까지가 의료행위인가에 대한 논란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3D 프린팅으로 복제한 인체 유래물, 인간 대상 연구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도 걸림돌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규제가 다양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양상을 타파하려면 관련 규제를 통합적으로 정비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기술 발전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별법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가 자율주행차다. 한국에는 일부 자동화부터 완전 자동화까지 1~5단계로 구분된 자율주행기술 단계도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개인의 위치정보를 교통정보 관리기관, 정비업체, 보험회사 등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데 따른 법령 정비도 필요하다.

안근배 한국무역협회 무역정책지원본부장은 “산업 성장의 로드맵에 따라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4차 산업혁명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한경·무역협회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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