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규직화 진통' 해소하려면

입력 2017-11-26 17:48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진통 큰 한국
핵심역량 자랑하는 중소기업 많다면 이런 논란 없었을 것
대기업은 비핵심 영역 떼어내고 전문성 갖춘 '히든챔피언' 키워야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공정거래위원장 >



“신일철주금에는 50여 개 자회사가 있는데 그중에는 장어 양식장도 있다. 연공임금제와 종신고용제 때문에 일본 기업은 구조조정은 둘째 치고 고령자 일자리를 위해 비핵심 사업까지 영위해야 한다.” 지난 9월 열린 한 국제세미나에서 일본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처럼 말했다. 일본 기업은 대부분 연금기관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부실경영 책임을 강하게 묻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들은 책임 경영보다는 공동 이익을 우선시하고, 기업이 부실화해도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단연 화제다. 비정규직 업무를 아예 모회사 안으로 끌고와 독립사업부화하거나, 자회사를 신설해 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모회사에서 정규직화하려면 기존 노조가 반발하고,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화하면 임금 차별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또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모양새가 돼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도 생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기업 경쟁력도 함께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서구에서는 일자리를 한시적(temporary)이냐, 영구적(permanent)이냐로 구분하지 정규직, 비정규직의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비핵심 사업은 외주를 줘서 해결하지만 핵심 사업은 자체 정규직을 통해 철저하게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방식이다. 핵심 사업을 외주줘서 안 되듯이 비정규직으로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려 들지도 않는다. 국가적으로도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핵심 역량이 강한 기업을 얼마나 보유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우리 역사를 보면 직업에는 귀천이 있었으나 기업 규모에 따른 귀천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기업 비정규직을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선호한다고 한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글로벌 중소기업이 많고, 취업 시 중소기업을 기피하거나 대기업을 선호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핵심 역량을 가진 중소기업이 많았더라면 이런 현상이 없었을 것이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보면 대개 3~4대에 걸쳐 핵심 역량을 키워온 기업들로 보유 특허가 많다. 벤츠나 BMW 같은 대기업도 엔진은 자기 특허지만, 기타 부품들은 납품기업이 특허를 갖고 있다. 윈도브러시를 만드는 슈투트가르트의 한 중소기업에 갔더니 엔진 공기압으로 밀쳐내는 윈도브러시까지 개발해 놓고 있었다. ‘브러시 없는 윈도브러시’다. 이 회사는 세계 자동차 제조사의 애프터마켓에 브러시를 공급한다. 최고의 기술로 핵심 역량을 유지·보존·개량해 나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영국의 글로벌 통신회사 보다폰은 쓰레기통에 사물인터넷(IoT)을 연결하면 싼 가격으로 데이터 통신을 공급한다. 쓰레기통을 수거하고 관리하는 업무는 관련 전문 기업에 맡기고 자신은 데이터 통신만 판다. 그 많은 쓰레기통 통신을 선점하면 통신시장 점유율이 대폭 높아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 항공기 통신망도 보다폰이 독점하고 있다. 한국 통신회사나 포털회사들의 사업 다각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은 핵심 역량에서 뒤진 기업이 인건비 따먹기로 경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노동집약적이거나 세부 업무별로 차별화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는 중소기업에 맞다. 대기업에서는 비핵심 영역이지만 이를 따로 떼어내 중소기업에서 영위한다면 핵심 영역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핵심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비핵심 업무라서 승진 길이 막혔던 비정규직도 중소기업으로 가면 핵심 업무가 돼 승진 길이 뚫린다. 핵심, 비핵심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전문적으로 관리해서 핵심 역량으로 키우느냐가 중요하다.

대기업이 비정규직을 쓰면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경쟁력은 정규직으로 핵심 역량에 전념할 때 생긴다. 어찌 됐든 핵심과 비핵심을 한 기업이 영위하면 교차보조가 불가피하고 그만큼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채용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자회사 간 협의를 통해 대가가 결정되면 시장의 경쟁 압력은 사라지고 비효율만 남게 된다. 더욱이 모자회사 직원 간 임금 격차, 복지 격차에서 오는 불협화음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공정거래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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