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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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특급 살인’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추리소설 원작을 40여 년 만에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가는 특급열차에서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되자 탑승한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범인을 찾아가는 스토리다. 기차 안의 밀실살인사건과 완벽한 알리바이를 지닌 13명의 승객이 용의자다. 포와로는 용의자들의 개인사를 추적하다 단서를 얻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추리보다는 화려한 캐스팅이다.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윌렘 데포 등 쟁쟁한 배우들이 나온다. 19세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무용수에 발탁된 천재 무용수 세르게이 폴루닌도 등장한다. 할리우드 영화로는 저렴한 순제작비 600억원을 투입해 지난 10일 개봉한 뒤 27일까지 세계에서 2억달러(약 2200억원)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김홍선 감독의 ‘반드시 잡는다’는 70대 구두쇠 노인 역 백윤식과 60대 전직 형사 역 성동일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힘없는 노인들을 연쇄살인해 자신감을 얻은 뒤 젊은 여자들까지 죽이는 범인이 등장한다. 30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성동일은 범인을 쫓다가 실패했다. 노익장 콤비가 맹활약하는 모습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엔진이다.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페이소스(슬픔, 연민)를 자아내게 한다.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은 반전의 묘미가 살아 있는 작품이다. 강하늘은 납치됐다가 기억을 잃고 돌아온 형 김무열이 어딘가 달라진 데 의심을 품는다. 형의 뒤를 몰래 추적하던 그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친다. 관객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세 영화 중 ‘오리엔트특급 살인’이 폭력 수위가 가장 낮은 12세 이상이다. 살인사건을 다뤘지만 잔인한 장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상징적으로 처리한 덕분에 온 가족이 퍼즐을 풀 듯 고전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두 한국 영화는 15세 이상이다.
세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소중한 사람을 살인범에게 잃은 피해자들이 평생에 걸쳐 복수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살인범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은 더 이상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만사를 제쳐두고 범인을 따라 특급열차에 오르거나 해결사, 최면술사를 고용한다. 치매를 앓는 환자이면서도 제정신이 들 때 범인을 추적한다.
세 영화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겉모습과 다른 내면을 들춰내 인간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한다. 순진한 학생이 끔찍한 살인의 유혹에 빠져들고, 바른 삶의 표본인 교사와 변호사가 피의 보복도 서슴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하는 의사와 백만장자 사업가가 무시무시한 살인 본색을 드러낸다. 반면 피눈물도 없어 보이는 수전노가 양심의 가책으로 목숨을 걸고 살인자와 맞서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동시에 인간을 보는 안목을 한 뼘쯤 넓혀준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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