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봉 지음 / 사회평론 / 290쪽 ㅣ 2만원
[ 양병훈 기자 ] 조선시대 도시 설계자들은 서울의 정문이었던 숭례문에서 경복궁을 잇는 탁 트인 직선 대로를 만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금의 서울광장 위치에서도 경복궁이 보이지 않았고 광화문사거리까지는 와야 경복궁이 보였다. 조선시대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큰 궁궐이 정면에 보인다면 왕의 권위를 과시하는 효과가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경복궁 뒤에 북악산이 있기 때문에 숭례문 위치에서 궁궐은 작은 점처럼 보일 것”이라며 “근처에 이르러서야 광화문이 보이게 한 건 관측자의 위치를 가까이 끌어와 상대적으로 광화문을 크게 보이도록 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학예사가 쓴 임금의 도시는 서울의 여러 궁궐을 답사하면서 그 궁궐의 풍경이 감추고 있는 왕권의 정치공학적 의도와 맥락을 찾아낸 책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주관적 감상의 대상이던 풍경을 역사 읽기와 문화유산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저자는 “풍경이야말로 단순히 건축물의 배경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접점에서 빚어지는 역사적·정치적 코드가 시각화된 강렬한 상징이었다”며 “우리 궁궐 풍경을 권위의 연출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우리 전통건축물의 규모가 작은 이유, 한양 도시 설계의 미스터리 등이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풍수지리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풍수지리학은 ‘자연의 정기를 받은 살기 좋은 땅’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이런 시각은 풍수의 기원과 목적에 대한 이해 없이 풍수에 대한 지엽적 기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생긴 오해”라며 “풍수지리학은 사실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한 이론이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북쪽을 바라봤을 때 하늘·산·경복궁이 함께 보이도록 한 것은 경복궁이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이데올로기를 상징적 이미지로 구현한 결과다. 경복궁 터가 ‘복이 있는 길한 자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는 이런 ‘공간의 정치학’을 통해 서울 민중의 삶도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조선시대 도성이 외국 군대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민의 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성문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드나들게 함으로써 국가 핵심시설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새해가 왔을 때 보신각종 근처에 많은 사람이 모여 기쁜 마음으로 종소리를 듣지만 조선시대에 보신각종 소리는 사람들에게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보신각종이 울리면 도성의 문을 닫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이를 1940~1980년대 야간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처럼 여겼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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