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새 구속적부심서 3명 석방
"밤샘 조사 뒤 긴급체포는 불법"
'적폐판사' 비난 쏟아지지만
법조계 "소신있는 엘리트" 평가
이정미 전 헌재소장 대행 이어
대법원장도 "정치적 이해관계로 재판결과 과도하게 비난" 우려
[ 이상엽 기자 ] 법원이 검찰의 적폐수사에 잇따라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에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조모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까지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 세 건 모두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52·사진) 결정이었다. 검찰의 긴급체포와 ‘구속 편의주의’에 경고장을 날렸다는 분석이다.
◆‘윤석열호’ 뒤흔든 잇따른 소신 판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를 이끌고 있는 신 판사가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측근 조모씨 석방을 결정하면서 밝힌 사유는 “검찰에서 밤샘조사를 받고 긴급체포된 점이 위법해 이에 따른 구속 역시 위법하다”는 점이었다.
신 판사는 최근 열흘 새 구속적부심을 통해 세 명의 피의자를 석방했다. 구속적부심으로 풀려나는 비율이 10%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 검찰의 긴급체포 남용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 하성용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등도 조씨처럼 수사 후 긴급체포되는 등 윤석열 호의 구속수사 남용에 대한 법원 안팎의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19기로 법복을 입은 신 판사는 부산고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작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맡고 있다. 일부 네티즌과 여권 정치인들이 ‘적폐판사’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과 달리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소신 있는 판결을 해 온 판사”라는 평을 듣는다. ‘동아투위 사건’과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관련해 국가 상대 소송의 재판장을 맡아 각각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정유라 특혜 입학’ 사건으로 구속된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과 ‘옥시 보고서 조작’ 논란으로 구속된 조모 서울대 교수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는 피의자들을 풀어주지 않았다.
◆이정미 이어 김명수도 신 판사 엄호
서울중앙지법 형사51부는 다른 형사합의부보다 서열이 높아 흔히 형사수석부로 불린다. 다른 형사합의부 재판장들이 지법 부장판사인 데 반해 신 판사는 한 단계 높은 고법 부장판사(행정부 내 차관급)다. 1심인 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통상 지법 부장판사들이 재판장이다. 반면 수석부는 고법 부장판사급이 맡고 있다. 수석부장은 법원장 부재시 대외적으로 부(副)법원장 역할도 한다. 권위가 높은 수석부 ‘선배’의 결정에 같은 법원 판사들조차 토를 달기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호의 적폐수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 판사에 대한 일각의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자 김 대법원장이 직접 방어에 나섰다. 김 대법원장은 1일 대법원에서 열린 ‘이일규 전 대법원장 추념식’에서 “최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내비쳤다. “여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장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며칠 전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원하는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판사를 공격한다면 인민재판”이라고 우려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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