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좋지만 정교한 대안·목표 부재
기업 의욕 살리고 갈등 최소화해야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그간 숨가쁠 정도로 분주하게 이른바 ‘개혁 드라이브’를 밀어붙여 왔다.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노동 존중’과 ‘복지 확대’를 목표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대통령 취임 사흘 만에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1만여 명의 연내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아낸 게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감축’이라는 대선공약 실천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 근로시간 단축,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건강보험 보장대상 확대 등의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 왔다.
이런 개혁 드라이브가 집권 7개월을 맞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 주말 여야가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에 실패한 것도, 여당이 밀어붙여온 개혁 정책들을 둘러싸고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분을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퍼주기’라며 반발했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건강보험 등에서도 여야는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했다.
명분을 앞세워 졸속으로 추진해온 정책들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회적 합의와 준비 부족 등으로 여기저기서 암초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국제기준에 맞춰 ‘과로사회’를 정상화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실업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지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국회에서 논란만 거듭되고 있다.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의 본사 직접고용 논란도 고용노동부의 정교하지 못한 정책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사례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기업들이다. 정부가 자유로운 경쟁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소비자 권리를 강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기업 사기를 떨어뜨리고 경영의욕을 위축시키는 정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책임투자를 강조하며 국민연금이 보유주식의 의결권을 적극 행사해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일련의 움직임도 기업들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 및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역시 명분 지상주의에 매달려 현실에선 허다한 왜곡과 부작용 양산을 예고하고 있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이사장의 언급처럼, 외국기업의 한국 내 투자를 가로막는 ‘준법 비용’을 높이는 조치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셈이다.
지난 주말 열린 한국정책학회 학술대회에서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이 “의도는 좋지만 정교한 정책 대안이 없고, 중장기적인 정책 목표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크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정부도 이젠 한 번쯤 뒤를 돌아볼 때가 됐다. 70%가 넘는 지지율에 가려져 있는 ‘악마’는 지지율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전면에 튀어나올 수 있다.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도 좋다”는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의 고언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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