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학이 없는 공대 연구

입력 2017-12-06 18:07  

"공학분야도 순수·기초에 지원 집중
산업에 필요한 중간단계 연구 '실종'
'공학적 기초연구'에 지원 늘려야"

김광용 < 인하대 공대 학장 >



공학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에서 정립된 기초 이론을 응용해 실용적인 기술을 개발, 실생활을 이롭게 하는 학문 분야다. 이런 공학분야 박사학위 취득자 중 가장 많은 수가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우수한 박사급 연구자들이 모인 공과대학이 국내 산업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많은 공대 교수들이 기초적인 연구와 논문 쓰기에만 매달리고 있는 등 공대의 국내 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지고 있다. 대학의 교수 평가시스템과 공대에 대한 정부 기초연구비 지원시스템의 문제가 결합돼 발생하는 현상이다. 공대 교수가 순수과학에 가까운 기초분야 논문만 써도 평가를 잘 받을 수 있고 연구비를 받는 데도 문제가 없으니 굳이 산업현장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국내 대학의 연구비 지원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공학분야 연구비 지원은 지나치게 기초연구에 치우쳐 공학적인 색채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첨단 연구와 도전적 연구를 강조하다 보니 공학분야 기초연구가 순수 학문의 아류가 되고 있다. 연구비 규모가 커질수록 기초적인 연구분야가 아니면 과제를 따낼 수 없다.

자연과학에 가까운 기초연구의 예로, 나노 분야는 10억분의 1m 초미세 세계에서의 물질 특성을 연구해 미래산업에 응용하고자 하는 분야로서 매우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공학적 실제 기술의 예로는 가스터빈 기술을 꼽을 수 있다. 가스터빈은 항공기 엔진이나 발전기로 널리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기계장치인데 이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다. 이런 기계장치를 설계하려면 여러 기술이 필요한데 이런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학적 기초연구가 필요하다.

간혹 후자와 같은 산업적 응용에 가까운 과제를 한국연구재단에 제출하면 산업기술평가관리원 과제로 하라고 밀어내곤 한다. 그러나 산업기술평가관리원 과제들은 지나치게 제품개발 위주여서 공학과 관련된 기초적인 연구를 하는 데는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공학의 기초와 응용 사이의 여러 단계 연구 중 중간단계는 연구비 지원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특히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파생시킬 수 있는 바로 아래 단계의 공학적 기초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없다.

순수 과학에 가까운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첨단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미래산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연구가 정부의 공학분야 기초연구과제의 대부분을 차지해서는 곤란하다. 다수의 공대 교수들이 응용성이 약한 순수 기초연구에만 매달리지 않고 국가 산업발전에 당장 기여할 수 있는 공학적 연구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2016년도 정부의 연구개발 기초연구비 계획을 보면 총 19조1000억원의 정부연구비 중 국립대 인건비나 시설·장비 비용 등을 제외한 13조3000억원이 기초연구 5조2000억원, 응용연구 2조7000억원, 개발연구 5조4000억원으로 나뉘어 배정돼 있다. 이 기초연구 5조2000억원 중 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에는 1조1000억원만 배정돼 있다. 정부 연구비 예산 중 연구재단 기초연구비 외에는 대부분 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기관을 통해 산업체 제품기술 개발에 사용되거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에 지원되고 있다. 공대 교수들의 공학적 기초연구에 지원될 예산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런 정부연구비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대 교수들이 ‘산업적 응용성이 강한 기초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을 각 정부부처 연구비 지원기관이나 한국연구재단에 신설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 연구개발 지원자금 중 일부를 대학 연구비로 돌리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공대 교수들의 연구 역량을 첨단산업기술 개발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학 연구비 지원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김광용 < 인하대 공대 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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