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원 기자 ] “정교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공무원 증원 규모 산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공무원 증원 규모가 당초 정부안인 1만2221명에서 여야 합의 결과 9475명으로 바뀐 근거를 묻는 질문에 “포뮬러(공식) 산출에 의한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9475명은 여당과 야당, 기재부 간 흥정의 산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은 7000명 이하를 주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 긴밀한 협의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1만500명, 국민의당은 9000명으로 맞서다 협의 끝에 민주당은 9500명, 국민의당은 9450명으로 각각 양보했다. 이에 대해 협상장에 정부 측 대표로 배석한 김 부총리가 중간치인 9475명을 제안해 채택됐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공무원 증원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는 어떤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 합의 과정에서는 이처럼 곳곳에서 원칙 없는 흥정과 야합이 눈에 띄었다. 한국당은 법인세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현재 22%에서 25%로 인상하는 정부안에 대해 구간 신설 대신 2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3%로 올리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129개 기업(2015년 법인소득 기준)의 세부담은 정부안에 비해 줄어들지만, 200억원을 초과하는 수백 개 기업에 추가로 세부담을 안기는 방안이었다.
중소·중견기업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당은 25% 세율을 적용받는 과세표준 구간을 3000억원 초과로 일부 올리는 선에서 합의했다. 정부안에 비해 기업 세부담을 약 3000억원 줄여주는 데 그치는 수준이었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우리는 얼치기 보수였다”는 자성이 나왔다. 기재부 세제실은 국회 조세소위에서 야당으로부터 “철학도 없고 준비도 안 돼 있다”는 비판을 들었다. 올해 초과 세수가 20조원 규모인데도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상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와 여야의 주먹구구식 합의가 당장 내년부터 어떤 부작용을 불러일으킬지 걱정이 앞선다.
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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