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인정보보호 수준 '적정성 평가' 승인받아
기업이 유럽의 개인정보 활용토록 도울 것
이효성 <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지난 6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구글의 반(反)독점법 위반에 대해 24억2000만유로(약 3조원)의 ‘구글세’를 부과했다. 국가 간 법망의 틈새를 허락하지 않고 강력하게 EU의 법체계를 집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EU가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적인 ‘룰 메이커’를 자청하고 나섬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은 EU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 사회의 동향에 대한 이해와 대응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도 피해 갈 수 없는 숙제가 됐다.
최근 유럽의 화두는 ‘디지털 단일 시장’이다. 28개 EU 회원국을 하나의 디지털 시장으로 묶으려는 전략이고, 거대한 역내 시장을 토대로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오프라인 시장의 통합을 넘어 온라인 시장까지 통합해 거대 단일 시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경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 청사진은 시장 규범과 산업 정책, 제도 인프라 구축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전략의 성공 열쇠는 ‘개인정보 보호’다. 안전한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통한 신뢰 구축은 역내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다. EU는 유럽 시민의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을 위해 작년 5월 EU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제정했고 내년 5월부터 이를 적용할 예정이다. GDPR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혁신 활동 확산에 필요한 개인정보의 처리와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체계의 확립이 결국 산업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GDPR은 지구 반대편의 먼 이야기가 아니다. GDPR은 EU 역내뿐만 아니라 역외에서 EU 시민의 정보를 다루는 모든 사업자에게도 적용된다. 즉, 지리적 범위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다. 아울러 GDPR은 정보주체 권리 강화, 개인정보처리자 책임성 확대 등 국제 개인정보 보호 규범의 흐름을 선도하는 전범(典範) 역할을 하고 있어 세계 각국 보호체계의 미래를 내다보는 지침이 된다.
GDPR 적용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GDPR이 규정하고 있는 막대한 과징금도 우리 기업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중요 위반사항이 있으면 사업자에게 최대 2000만유로 또는 전 세계 매출의 4% 중 높은 쪽으로 부과할 수 있어 개인정보 보호는 사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15년부터 EU의 ‘적정성 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EU는 제3국의 개인정보 보호체계가 EU 수준과 동등한지 검토하고 부합하는 경우 해당국으로의 자유로운 개인정보 이전과 활용을 보장하는 내용의 적정성 평가를 하고 있다. 한국이 적정성 평가 승인을 받으면 우리 기업은 별도 계약을 체결해 개별 당국의 승인을 받는 것과 같은 까다로운 규제 없이 영업 활동이 가능해져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의 정보 이전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 기반의 적정성 평가 협의를 EU와 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은 통신망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모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 우수성에 대한 EU의 폭넓은 이해가 이뤄졌고, 그 결실로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0일 EU 집행위원회를 방문해 EU 집행위 사법총국의 베라 요로바 집행위원과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양국은 개인정보 보호 및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위한 상호 교류·협력을 확대하기로 약속했고 내년 중 적정성 평가의 성과를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 1월 EU 집행위가 한국을 ‘적정성 평가 우선 검토국’으로 발표한 뒤 처음 나온 고위급 공동 의지 표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바야흐로 정보전쟁 시대다. 다가오는 GDPR 시행에 앞서 정부는 유럽과 개인정보 보호 적정성 평가 협의에 주력할 예정이다. 적정성 평가 승인을 통해 유럽 시민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국내로 이전해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면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으로 향하는 우리 기업의 자유로운 혁신과 도전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효성 <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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