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광 기자 ]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10여 개 롯데 계열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직후에는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회의에 참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고 세계 각국의 참가를 독려했다. 이달 초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1) 횡령·배임 혐의 4건 “신동빈 회장은 결정권 없었다”
검찰이 경영비리 혐의로 지난 10월 말 징역 10년을 구형한 뒤 신 회장은 더 분주히 다녔다. 빡빡한 재판 일정 중에도 그룹 현안을 챙기고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업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오는 22일 예정된 1심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마음이 더 급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공정위·국세청은 이미 “문제 없다” 판단
신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횡령과 배임으로 총 4건이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총수 일가에 ‘공짜 급여’를 제공(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하고, 적자가 나는 부실 계열사 롯데피에스넷에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자금을 지원(배임)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롯데쇼핑 사업부인 롯데시네마 매점을 서미경 씨 등에게 임대하도록 해 롯데쇼핑에 손해를 입혔다(배임)는 혐의도 받고 있다.
신 회장의 변호인은 “총수 일가에 제기된 혐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이 조사해 종결한 내용”이라며 “은밀하게 벌어진 일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한 일을 이제 와서 검찰이 문제라고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신 회장이 경영비리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검찰과 다투고 있다.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당시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는 게 신 회장 측 주장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본인의 급여 통장을 2013년에야 받았고, (지분이 있는) 증권 통장도 2015년에 넘겨받았을 정도로 그 이전까지는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1997년 국내에서 처음 롯데닷컴을 설립해 전자상거래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백화점 등 그룹 내 다른 유통 계열사들이 우후죽순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다”며 “당초 내 생각과 다르게 온라인 유통 사업이 진행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전권이 있었다면 통합 온라인몰 사업을 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2) 일본 주주들 ‘변심’ 우려… 총수 수감되면 경영권 흔들
법정구속 시 지배구조 개편 차질 불가피
재판부가 신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해 법정구속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롯데가 진행 중인 ‘뉴 롯데’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본 기업이란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작업이 좌초될 가능성이 있다. 롯데는 그동안 일본롯데홀딩스가 사실상 그룹 전체 지주사 역할을 했다. 한국롯데는 중간 지주사인 호텔롯데를 통해 지배했다. 호텔롯데 지분 99%는 현재 일본 주주들 손에 있다.
이 구조를 끊기 위해 롯데는 지난 10월 ‘롯데지주’를 출범시켰다.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 등 4개 상장 계열사를 분할 합병한 뒤 지주사 밑으로 넣었다. 신 회장이 최대주주인 롯데지주가 4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지배구조 개편의 1단계에 불과하다. 아직도 화학 건설 등 40여 개 계열사가 지주사 체제로 들어오지 못했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롯데지주가 지분을 더 확보해야 신 회장 체제 아래 ‘한국 기업’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호텔롯데를 증시에 상장해 일본 주주 지분을 50% 밑으로 낮추고, 호텔롯데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가져와야 한다. 이 작업을 완료하려면 최소 3~4년이 걸릴 것으로 롯데는 예상하고 있다.
(3) 신동빈 회장은 한·일 연결고리… 부재 땐 ‘뉴 롯데’ 차질
신 회장은 지금까지 이런 계획들을 일본 주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구속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신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직을 유지하는 게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일본에선 실형을 선고받으면 임원직에서 사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롯데홀딩스에 새 일본 경영진이 선임된다면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경영진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벗어나려는 호텔롯데 상장에 적극적으로 찬성할지 미지수다.
롯데 측은 신 회장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주주들과 롯데를 잇는 통로가 사실상 신 회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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