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 영국 원전 따내고 임기 만료 전 떠나는 조환익 한전 사장

입력 2017-12-07 17:42   수정 2017-12-0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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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도 인정한 한국 원전 기술…원전 생태계 망가지면 안된다"

사업비 우리가 조달 등 영국 원전 리스크 있지만
선진국에 원전 건설 앞으로 수주에 도움될 것

새해부터는 새 사람이 사장하는 게 좋다고 생각
날 풀어달라고 정부에 요청…2주 전 사의 표명



[ 이태훈 기자 ] 한국전력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 6일 밤.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한전은 예고 없이 보도자료를 내고 조환익 사장의 퇴임 소식을 알렸다. 조 사장은 지난 1년간 발로 뛰면서 국가적 원전 수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주역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두 번째 ‘쾌거’라는 평가도 쏟아졌다. 그런 낭보가 전해진 날 돌연 퇴임 소식은 주변을 의아하게 했다. 일각에선 “탈(脫)원전을 표방한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조 사장은 퇴임식을 하루 앞둔 7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자발적으로 사임하는 것이고 오히려 정부의 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압박을 받아서 나가는 것처럼 언론에 나오는데 영국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그만두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했다.

조 사장은 “이미 2주 전 영국 출장을 떠날 무렵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사의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백 장관과 영국 런던을 방문, 무어사이드 원전과 관련해 영국 정부 측과 최종 조율을 했다. 당시 원전 수주를 확신하고 곧바로 사임의 뜻을 굳혔다는 얘기다.

조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임기를 채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새해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사장을 맡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올해가 가기 전에 짐을 벗고 싶었다”고 답했다.

정부가 다른 에너지 공기업 수장을 물갈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다만 “이 정부가 한전을 굉장히 아낀다. 다른 공공기관장 물갈이하고는 다르다. 내가 계속한다고 했으면 3월까지 가는 건 문제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 사장은 “백 장관에게 강하게 얘기했다. 이제는 날 좀 풀어주면 좋겠다고. 올초 연임할 때도 그렇고 몇 번 물러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으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에 나가면 모양새가 이상하니 이번에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사장은 2년 반 동안 끊었던 담배를 작년 이맘때부터 다시 피우고 있다. “지난해 12월14일 원전 수주 논의를 하기 위해 영국 공항에 도착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공항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끊었는데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담배를 다시 피우는 것 외에는….”

조 사장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오기가 생겨 더 독하게 영국 원전 수주전에 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주전 막판에 중국과 세게 붙었다”며 “영국에 사진 세 장을 가지고 갔다. UAE 원전 4기를 건설하고 있는 사진, 원전의 메인 컨트롤센터가 완전히 디지털화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진, 내가 헬멧을 쓰고 작업복 입고 건설 현장을 지휘감독하는 사진이었다. ‘seeing is believing(직접 보면 믿게 된다)’이라고 이런 점들이 영국 측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했다.

조 사장은 “중국 원전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해외 수주 실적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가 UAE에 원전을 건설한 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조 사장은 “UAE는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곳이다. 원전에 모래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우리는 그런 곳에 원전을 건설했다. 영국이 그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사장은 “영국 원전 건설은 리스크가 있는 사업”이라며 “UAE 원전은 UAE가 건설비를 대주지만 영국은 우리가 자금조달부터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영국이라는 선진국에 우리가 원전을 건설한다는 게 큰 상징성이 있다”며 “전 세계 건설이 예정된 60기 정도의 원전을 우리가 수주하는 데 영국이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원전 관련 중소기업이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일감이 없어져 도산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하자 조 사장은 “그런 점 때문에라도 원전 수출이 더 많이 이뤄져야 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 공급망 관리를 해줘야 한다”며 “원전 생태계가 망가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퇴임식 준비를 위해 전남 나주행 KTX를 타러 나가기 전 조 사장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그는 “(어머니 기일인) 오는 14일까지만 피우고 다시 끊을 생각”이라고 했다. 앞으로 더 할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조 사장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69세”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과거 공무원 시절에도 수차례 사표 쓰고 했는데 그냥 내버려두질 않더라”며 웃었다. 그는 “당분간 책도 쓰고 강연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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