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덮은 햄의 위엄… 이탈리아엔 없대요

입력 2017-12-07 17:43  

지갑 털어주는 기자 - 이태리부대찌개


[ 이유정 기자 ] 어렸을 때 김장 김치가 시어버리면 단골로 식탁에 올라오는 메뉴들이 있었습니다. 김치전 김치찌개 등 여러 가지 ‘시뻘건 음식’들이었지요. 그중에 가장 사랑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부대찌개입니다. 물론 김치 때문이 아니라 동그랗고 네모난 햄 때문이죠. 맛에 대한 기억보단 오빠 그릇에 있는 햄을 뺏어오느라 사방에 김치국물을 튀기며 전투를 벌였던 기억이 더 선명합니다. 썩 좋은 기억은 아니죠.

맛있는 게 너무 많아지면서 부대찌개를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찰나 ‘초딩입맛’으로 유명한 친구 덕분에 제 인생의 부대찌개 2막을 여는 집을 찾았습니다. 이태리부대찌개입니다. 이름은 뭔가 앞뒤가 안 맞긴 하지만.

무려 오전 11시20분이란 이른 시간에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10번출구 근처에 있는 매장을 찾았습니다. 저번에 갔을 땐 줄을 길게 섰다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 때문이었죠.

“부대찌개 좀 먹겠다고 줄을 서겠냐” “줄은커녕 텅텅 비었구먼”이라며 구시렁대는 것도 잠시. 불과 20여 분 만에 가게가 가득 차고 정말 밖에 줄을 섭니다. 머쓱한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지가 그래봤자 부대찌개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부대찌개를 쳐다봅니다.

맛은 제쳐두고 이 부대찌개는 비주얼이 다른 곳과 완전히 다릅니다. 외국 출장 갔을 때 호텔 조식으로 나왔던 것과 비슷한 햄이 통째로 나옵니다. 삼겹살도 아니고 돼지갈비도 아니고 햄이. 통으로 나온 햄은 직원들이 먹기 좋게 즉석에서 잘라 줍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햄의 양. 일반적으로 먹었던 부대찌개가 낙낙한 김치국물에 햄을 포함해 여러 가지 식재료를 넣은 느낌이라면, 이건 뭔가 햄이 메인인 느낌입니다. 햄이 ‘고급진’ 맛이 나고 양도 거의 두 배인데 가격은 부대전골 기준 1인당 9000원으로 다른 데와 비슷합니다.

파스타처럼 국물이 적어서 이태리부대찌개인 건가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름에도 반전이 있었습니다. (많을 이), 太(클 태), 利(이로울 리)라는 한자어라고. 푸짐한 양, 큰 만족을 추구하겠단 의미라고 하네요. 학동역 맛집인 줄 알았더니 프랜차이즈라고 합니다. 학동역은 본점이고 신사역, 강남역, 선릉역, 보라매공원 부근 등에도 매장이 있습니다.

버터도 나눠줍니다. 버터를 넣어 밥을 한 그릇 다 비워도 햄이 남았습니다.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무려 햄이 남다니. 남은 햄을 보니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햄을 더 먹겠다고 싸우던 옛 생각이 난 건지, 항상 오빠한테만 햄을 더 주던(진실은 모르지만 당시 저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엄마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이제 와서 풀린 건지.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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