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밀실 야합이 만든 'ㄷ자 호남 KTX'

입력 2017-12-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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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만 기자 ] 호남고속철도(KTX) 2단계 노선이 수직으로 꺾인 ‘ㄷ’자로 확정되기까지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지난달 29일 호남 KTX 2단계 사업이 무안공항을 지나가도록 정부 예산안 편성을 촉구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6일 새벽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호남KTX 2단계 노선(2조4731억원)도 확정됐다. 무안공항은 이용객이 하루 평균 780명으로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낸다. 무안공항을 살리기 위해 추가 편성된 예산은 1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호남KTX 2단계 노선은 당초 ‘광주송정~목포’에서 ‘광주송정~무안공항~목포’로 바뀌었다.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여야 3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들도 실속을 톡톡히 챙겼다. 이들 지역구 예산은 수억원씩 늘었다.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원회 의장의 지역구도 마찬가지다. 20대 국회에서 3당 체제가 출범했지만 감시와 견제보다 ‘밀실 야합’이 더 늘었다.

국회를 향한 비난은 집단적이지만 의원의 선거는 개별적이다. “보좌진 숫자와 세비만 늘린 염치없는 국회의원”이라는 비난은 잠시만 견디면 된다. 지역구 예산을 따낸 의원에게 비난은 도리어 ‘훈장’으로 남는다. 선거에서 표를 몰아줄 유권자는 여론이 아니라 지역에 있다. ‘지역 예산을 확보했다’는 의원실 보도자료가 쏟아지는 이유다.

흔히 국회 예결위는 정부 예산안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표현한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도질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말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강도에게 칼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다. 반면 의사의 수술칼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다. 판문점 귀순 북한군 병사를 치료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수술 당시 환자가) 깨진 항아리 같았다”고 말했다.

예산안 협상에 참여한 야당 정책위 의장은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해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압박했다”는 글을 올려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지역 이기주의를 위해 예산안을 난도질하면서 국가 재정은 ‘밑빠진 독’이 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기만 정치부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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