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습관의 인문학
비 윌슨 지음 / 이충호 옮김 / 문학동네 / 508쪽 / 2만원
[ 김희경 기자 ] 1926년 미국 소아과 의사 클라라마리 데이비스는 생후 6~11개월 아기 15명을 대상으로 식습관 연구를 했다. 우유 사과 바나나 오렌지주스부터 양배추 당근 순무 소고기 등을 아기들이 먹을 수 있게 으깨거나 갈아 제공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주는 대로 먹지 않았다. 어떤 음식을 향해 손을 뻗거나 가리킬 때에만 간호사가 그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줬다. 그런데 사과나 바나나처럼 단 것에만 반응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놀랍게도 당근도 순무도 매우 잘 먹었다.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형성되지 않으니 편식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식습관의 인문학》은 식습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와 여기에 담긴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저자는 영국 출신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역사가인 비 윌슨이다. 전작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식당 도구의 발달과 인류의 삶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선 “누구나 자신의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이 있다”며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는 있어도 음식을 잘 먹는 법은 누구나 터득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음식 선호는 익숙함과도 연결된다. 어린이는 많은 음식을 맛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의 범위가 처음에는 어른보다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모가 이 일시적인 조심성을 영구적인 것으로 해석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가 조바심을 내며 “이 채소를 먹으면 단 것을 보상으로 주겠다”는 방식으로 회유하는 것도 위험하다. 채소를 먹는 행동 자체보다 단 것이란 보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트를 갈아서 케이크로 주더라도 아이는 비트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케이크 자체를 선호하는 경향만 강해질 뿐이다.
저자는 “이걸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 번 맛보게 한 뒤 조금씩 반복적으로 그 음식에 노출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음식 선택권이나 결정권이 없을 시기, 부모들은 대개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특정 채소를 억지로 다 먹어야 했던 경험을 한 사람은 해당 채소를 싫어하는 식습관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잡식동물인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태어난다”며 “어른들도 음식을 먹여주길 기다리면서 기대를 품고 앉아있는 어린이처럼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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