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미국, 주이스라엘 공관 방어 태세
팔레스타인 자치수반과
펜스 미국 부통령 회담 무산 위기
[ 박상익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촉발된 중동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사태 확산을 막고 있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이달 말 중동을 순방하면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날 계획이지만 팔레스타인 내 반응은 싸늘하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는 3차 ‘인티파다(반(反)이스라엘 민중봉기)’를 선동하고 있어 언제든 급격한 소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이란을 막기 위한 새로운 중동 정치 지형의 형성으로 이어질지도 관심사다.
◆미국 해병대, 미국 공관 방어 준비
8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주거 지역 곳곳에서 사흘째 시위가 이어졌다.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와 베들레헴 등지에서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은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 모습의 인형을 불태우거나 투석전을 벌였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이날 가자지구에서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 두 명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다고 시인했다.
하마스 지도자인 이사마일 하니야는 이날 연설을 통해 “우리는 시온주의 적(이스라엘)에 맞서 인티파다를 요구하고 인티파다를 시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규모 봉기로 이스라엘과 투쟁하겠다는 뜻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1987년 결성된 하마스는 1·2차 인티파다에서 이스라엘 공격에 앞장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로 서방국가에선 이들을 테러단체로 분류한다.
미국은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에 대한 위협 가능성이 높아지자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 구체적인 방어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자국 공관을 노린 행위가 발생하면 해병대 대테러팀이 대응하도록 돼 있다.
◆미국-이스라엘-사우디 결속할까
역대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에 중동 국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은 미국의 우방이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면서 촉발된 아랍 민중의 불만을 무마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이란을 견제하려는 외교 전략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핵·미사일 문제를 비롯해 이란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지금까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이슬람 수니파 국가도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아 미국과 함께 시아파 세력의 확장을 막아 왔다. 친(親)미 이스라엘은 이란이 지원하고 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여러 번 충돌했다. 사우디 인접국인 예멘에서도 후티 반군이 이란의 후원을 받고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개혁 정책이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은 이란의 급격한 세력 확장을 차단하려는 미국-이스라엘-사우디 간 신(新)중동 전략의 전주곡이란 얘기다. 이를 참지 못한 이란이 군사 행동에 돌입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데다 이스라엘을 용인할 수 없는 아랍 국민의 거센 반대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중동 전문 역사학자인 에단 코린은 “중동 내 일촉즉발의 상황, 이란과의 무력 충돌을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서 예루살렘에 미국대사관 둬야”
전문가들은 현 상태를 최대한 수습할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전직 이스라엘 대사 중 일부는 서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데 개방적”이라며 “다만 이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중단, 동예루살렘을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인정하는 문제와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고 전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중동 상황을 흔들어야 했다면 두 번째 급진적인 선택도 필요하다”면서 “동예루살렘에 팔레스타인 주재 미국대사관을 둬 두 개의 나라를 위한 두 개의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도 신선한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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