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테라젠이텍스 부회장 "맞춤형 의료 좌우할 유전체 분석...선진국 수준으로 규제 완화해야"

입력 2017-12-14 13:59   수정 2017-12-15 14:33



“암환자 1000명의 유전체를 해독해보면 모두 다른데 똑같은 항암제를 처방하면 효과가 같을까요?”

김성진 테라젠이텍스 부회장(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암세포는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어떤 돌연변이가 암세포를 만들었는지 모르고는 근본적인 암 치료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치료를 하려면 유전체 분석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김 부회장은 세계적인 암 전문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1994년 세계 최초로 암세포 생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TGF-베타 수용체 유전자의 결손과 돌연변이를 규명했다.

지금껏 그가 밝혀낸 기전에 기반한 많은 항암제가 개발됐다. 그는 강원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에서 응용생화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사후과정을 시작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1994년 종신 연구원직을 받고 2007년 가천대 의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줄곧 근무했다.

‘개인 유전체 해독에 처음으로 성공한 한국인.’ 김 부회장의 또 다른 별명이다. 그는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자신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했다. 미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유전체 해독에 성공한 지 5년만이자 세계에서 5번째였다.

김 부회장은 “암을 정복하기 위해 20년 넘게 단백질을 연구했다“며 "단백질보다 더 작은 단위인 유전자를 알아야 원인을 알고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형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했다.

2007년 귀국한 김 부회장은 가천대 의대 이길여암당뇨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NIH에서 암 유전자 조절연구실장을 맡던 그를 영입하려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미국까지 날아가 삼고초려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 부회장은 2009년 유전체 분석 전문업체 테라젠이텍스에 합류했다. 유전체 분석을 더 전문적으로 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합류와 함께 그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전체 분석 관련 인력을 자랑하는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전세계 다국적 제약사들은 해독한 유전체 정보를 모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유전체 빅데이터를 모으면 약물의 효과나 부작용과 관련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약물을 처방했을 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들을 모을 수 있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환자를 사전에 제외시키는 등 임상시험을 더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각국에서 유전체 분석 업체들을 키우고 이들에 다국적 제약사들이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테라젠이텍스도 일본의 암백신 전문업체 OTS와 지난 7월 합작회사 CPM을 설립했다. 테라젠이텍스가 보유한 유전체 분석 기술과 액체생검 기술에 OTS의 백신, 항암제 개발 기술을 융합할 계획이다.

김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유전체 분석 빅데이터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유전체 분석 회사에 직접 분석을 의뢰할 수 있는 DTC(direct-to-consumer) 검사가 체질량 지수, 카페인대사, 혈압, 혈당, 피부노화, 색소침착, 모발 굵기 등 12가지 항목에 대해서만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중국 등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앞서있는 나라들은 별도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김 부회장은 "미국이나 중국은 규제에서 자유로워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유전체 분석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유전체 굴기'를 경계했다. 김 부회장은 "몇 년 사이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고가의 유전체 분석 장비 매입을 적극 지원하고 유전체 분석 기업들을 설립하는 등 유전체 빅데이터를 모으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들보다 기술 수준이 뒤쳐졌지만 지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왔고 이제 앞지르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김 부회장은 "동일한 조건에서도 규모의 차이 때문에 경쟁하기 쉽지 않은데 한국은 유전체 분석 검사를 몇 가지로 제한하는 등 족쇄까지 채워져 있다"며 "정밀 의료, 맞춤형 의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전체 분석 규제를 적어도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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