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기 절반 밤에 쓰는데… 공장 멈추란 말이냐"

입력 2017-12-14 17:32  

8차 전력수급계획

8만7000여개 기업 심야 전기요금 내년부터 인상

'탈원전 불똥' 기업으로 튀나
기업부담 최대 연 4.5조 증가
전기료 할인폭 10%만 줄여도 연간 요금 5000억 늘어나
철강·석유화학·전자 등 큰 타격

값싼 전기료 찾아 온 해외기업도
"투자매력 떨어져"… 이탈 우려



[ 이태훈/김보형/조아란 기자 ]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건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일관되게 가져온 생각이다. 정권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지난 6월 국정과제를 마련하면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난 정부 야당 시절부터 줄곧 산업용 전기료 인상을 주장해왔다. 기업들이 일반 가정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하게 전기를 써왔다는 게 이유다.

산업계에서도 정부가 탈(脫)원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면서 전력 수급이 불안해질 경우 산업용 전기부터 손댈 것이란 우려가 컸다. 결국 우려대로 정부가 14일 산업용 전기료 인상 추진을 공식화했다. 첫 대상은 심야요금이다. 산업계에선 “가뜩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는 와중에 전기요금까지 오르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라는 것이냐”며 볼멘소리가 나온다.

◆산업용 50%가 심야 전기

한국전력은 전력 사용량이 많지 않은 심야(오후 11시~오전 9시)에 전기료를 할인해준다. 낮 시간에 전력 사용이 몰려 수급에 어려움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다. 산업용 심야 전기료는 여름철 기준으로 일반 시간대에 비해 34.4~46.2%, 피크(최대 전력수요) 시간대 대비 53.8~69% 저렴하다. 한전과 심야 전기이용 계약을 맺은 업체는 8만7567곳이다.

높은 할인율 때문에 전체 산업용 전기 사용량의 48.1%가 심야에 소비된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심야 전기료 할인폭을 10~90% 줄이면 기업의 연간 전기료 부담이 총 4962억~4조4660억원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작년까지 심야 전기를 가장 많이 쓴 사업장은 현대제철 당진공장(1위), 포스코 포항공장(2위), 포스코 광양공장(3위) 등 철강 업체들이다. LG디스플레이(4위), 삼성전자 화성2공장(5위), SK하이닉스(9위) 등 전자업체들도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철광석 석탄 등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가 또 다른 원가 상승 요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열처리업체를 운영하는 A사장은 “지금도 전기료 부담으로 주간에는 후처리작업만 하고 심야에만 열처리로를 가동하는 곳들이 많다”며 “심야 전기료가 오르면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지 고민하는 업체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심야에 공장을 돌리지 않는 기업도 타격이 크다”며 “금속가공 기업들은 철강 등의 원료를 대기업에서 사와야 하는데 이들 업체가 원가를 올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석유화학도 전기를 많이 쓰는 업종이다. 24시간, 365일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경우가 많다. 태양광 전지의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은 전기료가 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국내 1위 폴리실리콘 제조업체인 OCI 군산공장은 작년 매출 1조원 중 30%가량을 전기료로 냈다.

◆해외 투자자들 빠져나가나

해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값싼 전기료다. 외국계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한국은 인건비가 비싸고 내수 시장이 작지만 그걸 상쇄할 만큼 물류와 유틸리티(전기 수도)가 잘 돼 있다”며 “전기료가 오르면 한국 투자 매력도가 뚝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안 그래도 국내 자동차 생산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인데 한국GM, 르노삼성 등 다른 국가에 대체 생산기지가 있는 기업들은 물량 확보 및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산업용 전기료는 지난 10년간 아홉차례 인상돼 2008년 대비 63.7% 올랐다. 아직 선진국보다는 저렴하지만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는 점점 비싸지고 있다. OCI가 말레이시아에서 운영 중인 폴리실리콘 공장은 전기요금이 kWh당 2.9달러로 한국(8.7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태훈/김보형/조아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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