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덧없음 노래한 '베르사유의 궁전'이 컬러링
난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다
한 번에 세상 바꿀 수 없어…조금씩 개혁 작업 진행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갑질 근절'이 훨씬 중요
[ 임도원 기자 ] “전 로베스피에르가 아닙니다. 레볼루션(혁명)이 아니라 이볼루션(진화)을 하겠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4일 취임 6개월을 맞아 기자단과 한 송년회에서 난데없이 ‘프랑스 혁명’을 언급했다. 휴대폰 통화연결음을 내년 1월부터 새것으로 바꾸기로 했다며 연결음에 사용하기로 한 노래 가사를 인용하면서다. 김 위원장은 분기마다 통화연결음을 바꾸는데 여기에 본인의 의지나 생각을 담곤 한다.
새 통화연결음으로 삼기로 한 노래는 영국 출신의 미국 팝가수 알 스튜어트의 ‘베르사유의 궁전’이다. 김 위원장은 “파리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우리는 로베스피에르의 이름으로 그들의 저택을 불태워버렸다. 너는 왜 아직도 그날을 기다리니. 너의 시간은 바람에 헛되이 나간다”는 가사를 읊은 뒤 “혁명의 덧없음을 얘기한 노래”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우리 사회를 바꾸고 공정경제를 구축하려면 진화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며 “혁명의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취임 초기에 팔 비틀어 하는 개혁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실패하는 길로 들어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6개월 안에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지난 30년간 개혁이 실패했다”며 “절대로 그렇게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통화연결음에 등장하는 ‘대저택’에 비유하며 “4개 대저택(4대 그룹)을 불태우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적절하게 리노베이션(개·보수)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친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관계자와의 회동에서 자체 개혁안을 내놓으라며 시한을 ‘연말까지’로 제시했다. ‘기업들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한다’고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각 그룹의 문제점은 그 그룹에서 더 잘 알고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며 “요체는 방법을 실행하는 결정이고 그 결정을 빨리 해달라는 것이다.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삼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 문제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주주 계열사인) 삼성생명의 관계”라고 했다. 그는 “공정거래법을 바꿔 금산분리 규제를 사전적으로 강하게 규제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이 그 해결책”이라고 소개했다.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은 은행 보험 증권 등 업권별로 관리·감독해온 각종 금융 리스크를 특정 기업집단의 리스크 전체로 들여다보기 위한 별도의 감독시스템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금융계열사를 두 개 이상 거느린 삼성 한화 동부 태광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등을 대상으로 이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안이 시행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지분(8.3%, 26조원 규모)은 ‘적정자본’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든지 아니면 대규모 증자를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갑질 근절이 재벌개혁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도 했다. “갑질 근절은 국민의 삶과 직결돼 있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면 하도급업자 영세자영업자 등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본령”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요즘 언론이 ‘웬수’”라고 농담조로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달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하는 등 일련의 설화(舌禍)로 언론의 뭇매를 맞은 것을 가리킨 발언이었다. 그는 “시민단체 책임자로 15년간 일하면서 언론과 누구보다 깊게 교류했고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야속하다”며 “조금 더 기다리면서 지켜봐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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