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좌동욱 기자)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7일 국회를 방문한 이후 경제계가 시끌시끌하다. 기업들이 그동안 강하게 반대했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박 회장이 수용하겠다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박 회장을 만난 기업 경영인들은 죄다 “대한상의가 기업들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박 회장을 타박한다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다른 경제단체들은 대한상의 측 입장과 배치되는 듯한 경제계 요구를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재계에선 “경제단체들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자중지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박 회장은 뒤에서 슬며시 웃고 있다고 한다. 의도한 전략이 통했다고 판단해서다.
당초 박 회장이 가장 걱정했던 상황은 국회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입법 행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었다. 지난달 23일 여야 3당이 힘들게 합의했던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가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박 회장의 우려는 현실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였다.
평시라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문제는 사법부였다. 대법원은 지난 6년간 끌어왔던 근로시간 단축 관련 판결을 내년 초 내리겠다는 방침을 이미 공언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즉각 줄어들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나온 기준에 다툼의 여지가 있으면 노사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들을 다각도로 따져본 박 회장이 입법부를 직접 찾아가 조속한 제도 개편을 촉구한 것이다. 사실 이런 역할은 그동안 경총이나 중소기업중앙회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들 단체가 행동에 나설 움직임이 전혀 없자 박 회장이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박 회장의 전략적인 발언 타이밍과 수위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박 회장은 “경제단체들도 변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기업 측 입장만 앵무새처럼 대변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다. 친노동 성향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 회장은 “정부 정책에 맹목적으로 반대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했다. “입법화가 되지 않는다면 (나중에 발생하는 모든 부작용을) 입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전례 없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기업 측 입장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노사 합의안 통과를 요청한 것도 다른 경제단체들과 차이점이다.
박 회장 발언 나흘 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다음날엔 당·정·청이 긴급 회동을 갖고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박 회장 본인은 기업인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됐지만 전체 경제계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 따라 때론 ‘치고 빠지는’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박 회장의 진가가 잘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leftking@hankyung.com
(사진설명)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왼쪽)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7일 국회 환노위소회의실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 회장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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