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근무혁신으로 생생지락을

입력 2017-12-17 17:38  

김판석 < 인사혁신처장 mpmpsk@korea.kr >


필자가 초등학생 때 라디오에서 들은 그 목소리는 참으로 낭랑했다. 대학생이 돼서 본 드라마 ‘여고 동창생’에서는 더 밝고 청순했다. 그렇게 반세기 동안 매체를 통해 봐오던 그가 올해 여우주연상 4관왕을 차지했다. 국민배우 나문희 씨(76)다. 지난 추석 그가 주연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4관왕이 아니라 전관왕을 줘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영화에서 그는 민원이 수천 건이나 되는 ‘블랙리스트 민원인’ 나옥분 역으로 출연한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사무적으로 ‘도깨비 할매’의 민원을 대하던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분)는 나옥분과 점차 교감하면서 적극적으로 행정을 처리하는 ‘우수공무원’으로 바뀐다. 특히 박민재는 나옥분에게 꼭 필요한 영어 과외를 대가 없이 해주는데, 이로 인해 나옥분은 영어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의 아픔에 대해 증언해 외국인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 감동 스토리는 영화 속에서만 존재해선 안 된다.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면 민원인이 감동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직사회 근무혁신의 취지도 다르지 않다. ‘일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 제대로 쉬자’는 것이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2069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두 번째로 많다.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근로시간을 조사했더니 민간보다 200시간가량 많았다.

공무원도 보통 사람인지라 오랜 시간 일하면 지치고 힘들기 마련이다. 장시간 근무는 업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가족과 함께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다. 공무원 개인의 건강과 삶을 위협할뿐더러 국가 전체의 후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민원인의 감동과 국민의 행복은 멀어진다.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며, 일할 때 제대로 일하고 쉴 때 제대로 쉬는 직장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그 출발이 공직사회 근무혁신이다. 영화 속 감동 스토리가 현실이 되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서경(書經)에 ‘생생지락(生生之樂)’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 고대 상나라의 군주 반경(盤庚)이 “만민이 생업에 종사해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말을 세종대왕이 즐겨 인용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한다. 요즘 우리 젊은이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근무혁신은 일반 사회는 물론 공직에서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며, 진정한 생생지락의 첫걸음이다.

김판석 < 인사혁신처장 mpmpsk@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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