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우리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일대가 한국 최초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도 화려하고 독창적인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로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는 명소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이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나 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정도는 우리의 끼와 기로 충분히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정부가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앞장서 기획하고 추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판단했다. 규제를 완화해 준 정부에 감사했고, 세계 최고로 멋진 디지털 파크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업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정부와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전문가들과 함께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투자자 공모와 디자인 심사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한껏 부푼 기대감은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고, 결국엔 좌절로 이어졌다. 규제프리존이었지만 많은 규제가 문제의 주범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무역센터 일대의 특성에 맞게 바닥에 부착하는 지주형 디스플레이를 세우겠다는 아이디어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사전 협의가 부족했던 점이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 중앙정부가 승인한 사업자 계획이 실행 단계에서 규제를 직접 담당하는 지방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반쪽짜리 규제프리존이었던 셈이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규제 공화국임을 실감하게 됐다.
얼마 전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은 ‘안돼 공화국’이다. 규제 순위가 세계에서 95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이 느끼기에는 세계 95위도 되지 않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산업 판도가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각종 규제로 새로운 시장 개척을 막고 있다. 어느 기업인은 아프리카보다 사업하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내놓은 전략이 혁신 성장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규제 개혁이다. 규제의 밭에서는 혁신이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 개혁을 위해 직접 나섰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무역센터 일대가 완전한 규제프리존이 되기를 바란다. 독창적인 미디어 콘텐츠가 꽃을 피워 세계인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관 <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jkkim8798@kit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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