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의존도 낮추고 대일 비중 높이자"
시장분석 통해 한국브랜드 이미지제고 필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한국 경제의 과도한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잠재력을 100% 발휘 못하는 대일 무역·투자·인적 교류 비중을 높이자는 제언이 나왔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접근을 지양하고 시장적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한일재단)과 한경닷컴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개최한 ‘한일 잠재력 극대치까지’ 주제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인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일본 시장을 면밀히 파악해 맞춤형 제품을 내놓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일본 시장에서의 한국 기업 부진은 양국의 정치적·역사적 쟁점과는 무관하다는 분석이다.
서석숭 한일재단 전무는 “지난해 한국의 대일 수출 비중은 전체의 약 5%, 일본에 대한 직접투자 비중도 2% 수준에 불과했다. 인접한 경제 대국과의 교류 치고는 너무 적다”고 문제제기했다. 고광철 한경닷컴 대표도 “지나친 중국 편중이 한국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부진한 일본과의 관계 활성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양국 관계에서 일본에 대한 한국의 비대칭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게 서 전무가 던진 화두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이웃나라인 일본과는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고 최대한 협력하면서 경쟁해나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설파했다. 일본 문화의 원형(原形)을 탐구한 고전 〈국화와 칼〉을 언급한 건 그래서였다. “일본과 교류하며 경쟁한다는 의미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일본이라는 독특하고 복잡한 나라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란 풀이가 뒤따랐다.
◆ 일본 시장 '면밀한 분석'이 최우선
토론자로 나선 일본인 전문가들은 쓴 소리를 쏟아냈다. 양국 무역·투자·인적 교류의 ‘상대적 부진’은 구조적 요인이 크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럼에도 일본으로선 특별히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도 전했다. 바로 그 점이 양국 관계에서 한국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토리 다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는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본의 부품·소재를 수입해야 한다. 양국 간 1:1 관계라기보다는 전체 맥락에서의 역할분담 측면이 크다”고 짚었다. 미키 아쓰유키 한국미쓰이물산 대표이사도 “중국, 인도 등에 비하면 한일 양국 시장은 규모가 작아 쌍방 투자는 한계가 있는 구조”라고 했다. 다카하시 가쓰노리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서울지점장 역시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생산비용이 더 높은 일본에 대한 한국 기업 진출은 적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토리 공사는 “결국 ‘어떻게 하면 한국 기업이 일본이라는 큰 시장을 보다 잘 공략할 수 있느냐’가 핵심 질문”이라고 정리한 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일본인들이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예컨대 일본은 소형차 수요가 많은데 한국 완성차 업체는 중형차에 주력하는 식이라고 부연했다. 와카이 슈지 한국닛켄 대표도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자동차 구매 수요가 적다.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현지 속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제품과 시장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카하시 지점장은 “위안부나 독도 문제 같은 양국 간 정치적 쟁점이 소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 안이한 인식이다. 본질인 제품과 시장을 제쳐두고 거기에 정책 초점을 맞추면 잘못된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양국의 차이점을 눈여겨보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미키 대표는 “양국 산업구조가 비슷하다고 해도 서로 다른 점을 살펴보면 수출이나 투자 기회가 생긴다”면서 일본에선 퇴조했으나 한국은 강한 조선·해운 산업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와카이 대표도 “양국의 차이점부터 확실히 알아야 벤치마킹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며 “지금의 일본이 있기까지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곡을 찌를 수 있는 심급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본 시장 진출에 성공한 기업은 루이비통 같은 글로벌 최고 수준 브랜드란 점도 상기시켰다. 다카하시 지점장은 “이러한 일본 시장 특성을 감안해 한국 기업들도 제품의 질 못지않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사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일본 기업을 한국 기업이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의 진출도 검토할 만하다고 했다.
◆ "양국 국민간 선입견·괴리 매우 커"
이처럼 양국 관계의 실질적 성장이 막힌 기저에는 인적 교류 부족이 자리했다는 게 국내 체류 일본인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간극이 벌어진 틈에 상대 국가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편견이 강화되는 식이다. 이러한 흐름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괴리가 생기는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요시모토 고지 경상대 교수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본토 일본인 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차이가 나는 점이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이를테면 “한국은 위험한 곳”이라거나 “한국은 일본보다 물가가 싸다”는 등의 선입관이 그렇다.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비교해도 격차가 상당해 시사점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K팝 등 정부 차원의 국가 홍보 노력과 별개로 ‘한국인의 실제 삶’이 어떤지 알리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일본 현지에서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향 역시 문제라고 짚었다.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 선임연구원은 “일본에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너서클 식으로 형성되고 외연이 확대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한국이 이런 경계를 없애나가는 방안을 모색하면 양국 인적 교류 활성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빨리’가 앞서는 한국과 ‘오래’를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차이에도 초점을 맞췄다. 사쓰모토 다쿠마 신구대 교수는 “일례로 대학 교류만 해도 한국은 일회성, 단발성 위주로 생각하는 반면 일본은 교류 성사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시작하면 지속성을 중요시하는 편”이라며 “서로의 특성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규슈 지역 언론인 니시니혼신문의 소야마 시게시 서울지국장은 ‘축적된 교류’의 물질성에 방점을 찍었다. 니시니혼신문이 부산일보와 15년가량 인력 교류를 펼쳐왔다고 소개한 그는 “대다수 일본 언론이 한국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데 비해 우리 신문은 브레이크를 건다. 꾸준한 교류가 보도 스탠스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야마 지국장은 “양국 언론이 대승적으로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도록 균형 있게 보도하려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카지마 하루미 씨는 주부 시각에서 소소한 일상의 개선 방향을 귀띔했다. 그는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일본의 편의점처럼 각종 식재료를 소분(小分)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등 문화가 바뀌면 일본인도 한국에서 생활하기 쉬워질 것”이라며 “일본인들이 한국에 오고 싶게 만드는 ‘문화적 힘’이 중요하다. 여행객 유치도 서울 위주에서 벗어나 한국의 각 지방 관광 자원을 브랜드화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 "맞춤형 제품으로 일본 시장 공략을"… 한일재단·한경닷컴 토론회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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