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을 통제한다는 건 '오해'
지주사 전환 시책 따른 결과일 뿐
반기업정서를 조장하기보다
경영권 방어책부터 마련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대기업 전담조직인 기업집단국에 대기업 계열사 수 확대를 문제시하는 발표를 자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계열사 수가 몇 개인지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자금 동원력이 그나마 조금 나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인수합병(M&A)에 주저하지 말고 나설 수 있게 한 것으로 스타트업 활성화, 즉 창업 활성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대기업 내 스타트업은 1000~3000개에 이르는데 이들이 성공하면 모기업이 인수함으로써 창업자들이 일시에 큰돈을 만지게 되고 더 나은 후속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사례가 많아 이 모델의 유효 적절성이 증명되고 있다. 공정위가 모처럼 현실을 직시해 내린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일부 언론이 “재벌 총수들이 낮은 지분율로 그룹 경영권을 좌우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들 언론은 “총수 지분이 적다는 점을 단정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이다”고 썼다. 이 기사의 진원지는 공정위의 ‘2017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 공개’라는 보도자료였다. 이 보도자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일부 집단은 총수 일가 지분이 1% 미만으로 나타났다”는 대목이다. 이런 보도자료를 기자들이 놓칠 리 없었던 것이다. 공정위가 이런 기사를 유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국민은 다시 한 번 한국 재벌 또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反感)을 키웠을 것이다. 한국 재벌 총수들이 여전히 쥐꼬리 지분으로 그룹을 호령하는 구시대적 ‘황제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낮아지고 내부(계열회사) 지분율이 높아진 것은 맞다.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내부 지분율 변화 추이’를 보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1998년 2.9%이던 것이 2017년에는 0.9%로 낮아졌으나, 내부 지분율은 1998년 37.9%에서 2017년 55.5%로 높아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정부가 순환출자를 해소할 것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기업이 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반대로 11위에서 30위까지의 하위 그룹은 총수 지분율이 높고 내부 지분율은 낮다. 지주회사로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계열회사에 대한 총수의 지분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체제에서 총수는 지주회사를 지배할 만큼의 주식만 가지면 된다. 지주회사가 그 아래 자회사와 손자회사들을 통제하므로 총수가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주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인수를 권할 수도 없고 상황도 안 된다. 마지막까지 인수가와 지분 비율을 놓고 컨소시엄까지 구성해 다수 기업이 첨예하게 경쟁하는 글로벌 M&A 시장에서 아무리 대주주가 원한다고 한들 자기 숟가락을 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계열회사가 M&A 등으로 타 회사를 인수할 경우 그때마다 총수가 사재를 털어 그 타 회사 주식을 인수할 수도 없다. 지주회사 체제를 부르짖는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했는데 이제 와서 총수들이 적은 지분으로 그룹의 황제가 됐다고 힐난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지분율 산출 방식도 문제다. 공정위는 총수가 보유한 주식의 액면 총액을 기준으로 지분율을 산출했다. 이것은 실제 총수가 투입한 자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무의미한 숫자다. 투입하는 자금은 언제 무슨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했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주식발행 초과금 등은 모두 무시됐다. 그룹 내 계열회사 등이 지분을 보유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내부 지분율 역시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는 각 상장회사의 경우 20% 이상 또는 비상장회사의 경우 40% 이상 자회사 지분을 취득해야 한다. 그래서 취득했더니 이제 와서 내부 지분율이 높다고 불평이다.
기업이 투자 등 경제활동을 열심히 할수록 대주주의 지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는 수단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소수 지분 지배로 비난만 한다면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으로 주식을 확보해 지배력 강화에나 힘쓰라는 것인지…. 마윈의 알리바바를 미국 나스닥에 뺏긴 홍콩거래소는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과 상장을 허용키로 했다. 공정위가 공정하려면 눈에 낀 색안경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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