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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목 산업부 기자) 미래전략실 해체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삼성그룹에는 ‘수요 사장단 회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 모여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습니다. 수요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사장단 취재를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로비에 있으면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버튼 두 개를 풀어헤친 셔츠. 콤비 정장이라도 점잖음을 잃지 않는 삼성 사장들의 모습 속에서 유독 튀었습니다. 20일 사의를 표명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이인종 부사장입니다.
1989년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인종 부사장은 2011년 삼성전자 전무로 입사했습니다. 그 사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교수로 있던 2000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벤처회사를 창업한 것에서 보듯 모바일 소프트웨어에서 일찍부터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2011년 삼성전자가 이 부사장을 영입한 것도 하드웨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로 온 이후 이 부사장은 승승장구했습니다. 2012년 연말 무선사업부 B2B 개발팀장에 오르며 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2015년 연말에는 핵심 요직인 무선개발1실장을 맡았습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와 인공지능 플랫폼 ‘빅스비’, 모바일 B2B 서비스인 ‘녹스’ 등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모바일 소프트웨어 제품이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리콘밸리 출장에도 자주 동행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거침없어 보이던 이 부사장의 행보가 흔들린 건 올 여름부터입니다. 이 부사장은 자신도 “이제는 지쳤다.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사석에서 자주 했습니다. 10월에는 이 부사장이 맡아온 빅스비 개발을 정의석 부사장이 맡게 되며 곧 퇴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11월 인사 이후 삼성전자는 이 부사장에게 중책을 맡겼습니다. 무선사업부 CTO(최고기술책임자) 자리를 제안한 것입니다. 다만 여러 한계가 있는 빅스비의 성능을 제대로 개선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스스로가 만든 빅스비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던 이 부사장은 이같은 요구에 자존심을 많이 상해했다는 후문입니다.
이제 삼성전자를 떠나는 이 부사장은 미국에서 인생 3막을 열 예정입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에서 삼성전자보다 높은 대우를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가 미국에서는 어떤 활약을 할지, 그리고 이 부사장이 떠난 빅스비는 어떻게 변신할지 궁금합니다. (끝) /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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