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주택 적정 공급량

입력 2017-12-20 17:48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주택은 낡아가는데 가구 수는 늘어나고 있다. 저성장 국면에 빠졌다지만 생활수준은 개선된다. 일정 규모로 새 집이 필요한 요인이다. 산업의 고도화,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수요는 대도시에 집중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인구고령화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5년 10년간 국내에서 매년 27만8000호가 필요하다.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가 “장·노년층의 수요가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대목이 주목된다. 한동안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퇴직과 함께 보유주택을 팔 것이고, 그에 따라 주택시장은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한은 분석은 그 반대다. ‘5060세대’가 집을 새로 구매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흔하다. 올 들어서만 정부가 몇 차례나 안정대책을 낼 정도였던 서울 등지의 집값 상승세도 한은의 수요 분석과 전망으로 보면 잘 이해된다.

공급쪽에서 보면 어떨까. 국내에서 한 해 ‘적정 수준’의 유효공급량은 어느 정도인가. 주택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5~2022년 연평균 33만 호다. 2015년 34만5000호에서 조금씩 감소해 2022년 29만5000호로 뚝 떨어진다. 가구증가, 대출금리와 전세·매매가 동향이 두루 반영된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의 정책 목표인 ‘중장기 주택공급계획’(2013~2022)에 잡힌 연간 39만 호보다는 조금 적다.

주택산업연구원 분석이 시장에서 무난한 소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정부 숫자는 시장이 안정될 정도의 여유분을 포함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1990~2013년 연평균 53만 호씩 공급됐던 것과 비교된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택의 수요도 공급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관건은 주택의 특수성이다. 공급 가능한 곳과 수요가 몰리는 곳의 ‘미스 매치’가 한국 아파트시장만큼 심한 경우도 드물다. 소수 특정지역은 만성 과열, 지방과 대도시 외곽은 수요가 극단을 오간다.

내년도 아파트 공급량이 36만2208가구에 달한다고 한다(한경 12월20일자 A1, 4면). 93개 건설사가 분양을 준비 중인 이 물량은 올해보다 12%나 많다. 2015~2016년에 아파트 100만 호(전체주택은 140만 호)가 공급됐다. 이 물량의 준공으로 내년에 입주대란 전망까지 나오는 판에 이어지는 공급 풍년이다. 너무도 익숙한 ‘미분양해소 대책’ ‘깡통주택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안 나올지 걱정스럽다.

시장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매매 희망자들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중심을 단단히 잡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과 ‘시장의 자율조정기능 강화’로 가야 한다. 집이든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다 마찬가지다. 이것만 제대로 지켜져도 주택시장이 ‘롤러코스터’를 벗어나지 않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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