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자력 발전소 수출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인도와 원전수출협정을 맺은데 이어 이번에는 유럽 폴란드의 차세대 원전건설 사업을 일본기업들이 유치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시행됐던 탈원전 정책을 전면 수정해 차곡차곡 원전 재가동에 들어갔던 일본 원전 산업계가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민·관 협력으로 차세대 원자로인 ‘고온 가스로’를 2030년까지 폴란드에 건설키로 했습니다.
도시바와 미쓰비시중공업, 히타치제작소 등 일본 원전 기업과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가 중심이 돼 유럽에 진출하는 것입니다. 이미 폴란드에 기술자를 파견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온 가스로’는 일반 원자로(경수로)와 같은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지만 냉각제로 물 대신 헬륨 가스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화학반응이나 증발이 일어나지 않고, 수소 및 수증기 폭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고 등으로 냉각 전원을 잃고도 노심 용융을 일으키지 않아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사성 폐기물의 양도 기존 원자로 보다 4분의1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고온가스로는 출력이 20만~30만㎾로 일반 원전보다 작지만 인구 수십만 명 규모 도시에서 에너지원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폴란드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지방 도시를 대상으로 건설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네요.
이번에 일본 민·관이 건설하는 폴란드 원전은 출력 16만㎾ 규모라고 합니다. 새해에 양국 간 공식 합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2018년 폴란드 현지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2030년에 상용로의 운전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 전 단계로 2025년까지 폴란드 국립원자력연구센터에 출력 1 만㎾급 연구로를 건설한다는 계획입니다. 상용로 1기당 가격은 약 500억엔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500억~1000억엔(5000억~1조원)규모의 수주가 될 전망입니다.
일본은 일반적인 원전으로는 수출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 폴란드를 발판으로 차세대 고온가스로 수출에 주력할 방침이라는 소식입니다. 앞서 일본 원자력기구는 세계 최초로 고온가스로 연구로를 만들어 출력 3만㎾를 실행한 실적이 있습니다.
폴란드는 국내 에너지 생산의 80% 가량을 석탄 화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유럽 연합(EU)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엄격해지고 있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고온가스로 도입에 적극적이라는 분석입니다.
초대형 원전사고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원전 재가동을 선택하고 퀴리부인의 나라에까지 원전을 수출하는 일본의 모습은 한국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움직임을 단순히 비웃거나, 비난하거나, 비판하는데 그쳐서는 우리가 얻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올들어 갑작스럽게 탈원전 논란에 휩싸이면서 산업 측면에서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국내외 사업 전망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일본의 행보를 눈여겨보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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