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혁명' 심장부 노리는 사우디… 미국 셰일 생산시설 인수 나섰다

입력 2017-12-21 20:06   수정 2018-03-21 09:17

내년 IPO 앞둔 국영기업 아람코
미국 셰일광구 투자·LNG 수입 모색
석유로 전력 발전하는 사우디
천연가스 수입 땐 원유수출 증대

석유시장 패권 놓고 '오랜 다툼'
"사우디 정책 변화, 놀라운 일"



[ 박상익 기자 ] “놀랍다. 미국의 셰일혁명이 미친 충격이 얼마나 극적인지 보여주는 일이다.”(제이슨 보도프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연구소장)

석유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에너지 자산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 대상에는 사활을 걸고 ‘치킨게임’을 벌이던 경쟁자 셰일업계 생산시설도 포함돼 있다. 세계 에너지시장을 좌지우지해온 사우디여서 이런 변화는 ‘놀랍고,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셰일오일·가스 생산시설 인수 타진

WSJ에 따르면 사우디의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미국 양대 셰일산지인 퍼미언과 이글포드 광구에 있는 생산시설을 인수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턴의 액화천연가스(LNG) 회사 텔루리언과 접촉해 회사 지분 일부를 인수하거나 LNG를 수입하는 방안도 협의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생산국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에너지원을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리더로서 원유 생산량 조절을 이끌면서 국제 유가를 관리하기까지 했다.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셰일혁명’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은 퇴적암(셰일)층 채굴 기술을 발전시켜 셰일원유와 가스를 채굴하기 시작했다. 2008년 하루 470만배럴 정도였던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2015년 4월 셰일원유를 포함해 960만배럴로 증가했다. 미국은 러시아, 사우디와 함께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이 됐다.

미국이 셰일오일을 앞세워 글로벌 수출시장에 끼어들자 사우디는 시장을 지키겠다며 2014년 셰일업계와의 증산 전쟁에 나섰다. 시장에 원유 공급을 늘려 생산성이 다소 떨어지는 미 셰일업계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적지 않은 셰일업체가 파산했지만 몰락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사우디를 비롯한 많은 산유국이 공급 과잉에 따른 유가 하락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오일달러 확보가 크게 줄어든 사우디는 재정 악화에 빠졌다.

◆‘어제는 적’에서 ‘오늘은 동지’?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미 셰일업체는 2차 기술혁명으로 손익분기점을 낮추고 있다. 셰일층 파쇄 방법을 개선하고 생산에 필요한 물과 모래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정 하나에 들어가는 평균 생산비용은 2013년보다 60% 줄어든 550만달러로 낮아졌다. 쉘은 새로 개발하는 셰일유전의 손익분기점 목표를 배럴당 20달러로 잡고 있다.

미국 셰일업계를 시장에서 몰아내려던 기존 산유국은 이제 이들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됐다. 유가를 회복시키기 위해 감산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격이 오를 때마다 셰일업체들이 셰일원유를 내놔 이익을 챙겨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OPEC의 감산에 협조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감산 조치가 미국과 사우디에만 좋은 일’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람코가 셰일업체 생산시설 인수 등의 방식으로 미국 에너지시장에 관여한다는 것은 더 이상 셰일업계를 모른 체 할 수 없게 됐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또 다른 중동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국부펀드도 올초 “미국 셰일산업의 역동성, 기술적 특성, 비용적 성격을 파악하겠다”며 소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WSJ는 “아람코가 미국 셰일 생산에 참여하면 셰일업계 상황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LNG 수입하면 원유 수출 늘어나

아람코는 세계에 정유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석유나 천연가스는 생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우디가 석유 중심의 발전 정책을 수정하면서 천연가스 발전 확대 필요성이 높아졌다. 사우디에도 천연가스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추출이 어렵고 황 함량이 높아 정제 비용이 더 든다. 천연가스를 수입하려 해도 항만 등에 전용시설을 설치하고 발전소까지 옮기는 비용 때문에 자국 석유로 전기를 발전하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이 같은 정책은 아람코의 기업공개(IPO) 준비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우디가 천연가스를 수입하면 발전용으로 소모하던 원유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어 그만큼 아람코에 이익이 된다. 천연가스 수입에 드는 제반 비용을 감안해도 장기적으로는 원유 수출로 인한 수입이 이를 초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컨설팅 회사인 포텐앤드파트너스는 “사우디가 원유 발전 비중을 줄이면 연간 1200만t의 천연가스를 수입할 수 있어 중동 최대 가스 수입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크 휴스턴 텔루리언 공동창업자도 “LNG 수입은 원유 수출량 증가를 뜻하기 때문에 사우디에 매력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아람코가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모습도 IPO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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