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안보전략에 드러난 트럼프의 '제로섬 게임' 세계관

입력 2017-12-22 17:27   수정 2018-01-0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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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란 기자의 Global insight


[ 허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새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하자 언론과 학계의 비판이 쏟아졌다. “전략이 없는 전략이다” “대선 공약의 일부일 뿐이다” “구체성과 수단이 없다” 등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이 타협적으로 내놓은 자료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하고 그의 관점에 맞게 수정한 미국의 외교정책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새 NSS에서 주목할 부분은 ‘미국 우선주의’가 고립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됐다는 점이다. 즉 미국의 국제적인 헌신과 러시아 및 중국과의 경쟁에 맞설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역대 NSS 보고서엔 등장하지 않은 단어지만 국제무대에서 미국 역할을 강조한 맥락은 비슷하다.

NSS 보고서는 1986년 골드워터-니컬러스법 제정 이후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의회가 행정부의 국제적인 관심과 목표를 검토하고 예산을 조정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NSS는 당초 목적과는 멀어졌다. 목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수단은 희생됐다. NSS가 수사학적으로 흐르고 거창한 목표를 갖게 된 이유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발표한 NSS의 목적을 “세계에서 폭정을 끝내는 것”이라고 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 전염병부터 대량살상무기(WMD) 등 8가지 우선순위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전 처음으로 NSS를 발표하며 냉전을 종식시키고, 미국 패권과 자신감을 부활시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따라잡기 위해 이 같은 전략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학과 NSS 전략 사이엔 분명한 간극이 있다. NSS가 ‘국방비 예산 증액’을 촉구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법 발효를 위한 서명만 남겨둔 상황에서 이는 요원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난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위협했음에도 NSS는 ‘동맹국 및 파트너와 경제적 유대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데 있다.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을 한꺼풀 벗기면 ‘다른 국가의 이익은 자국의 손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트루먼 행정부나 이후 아이젠하워 행정부조차 경쟁도 존재하지만 국제관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NSS의 서문 편지에서 일본과 다른 동맹국이 무역과 통화흐름을 조작해 부자가 되는 사이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 안보를 무료로 즐겼다고 비난했다. 다른 나라의 ‘경제적 도둑질’을 줄이기 위해 기술과학 분야 학생들의 비자발급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불신과 비관주의도 서슴없이 드러냈다.

새 NSS는 △미국인과 국토, 미국인의 삶의 방식 보호 △미국인의 번영 증진 △힘에 의한 평화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 네 가지 기둥(목표)을 제시했다. ‘힘에 의한 평화’는 미국 안보전략의 우선순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중국 같은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power) △이란과 북한 같은 불량정권(rogue regime) △지하드 같은 다국적 테러조직이 미국 패권에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억압적인 제도와 자유로운 사회가 정치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들과 미국 및 동맹국을 대결구도에 뒀다. 새 NSS가 ‘신(新)냉전’ 선언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마지막 기둥에선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국과 함께 국제적인 공조를 이룰 것이라고 역설한다. 유엔 같은 다자 간 기구에서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공언도 포함됐다. 이어 인도·태평양, 유럽, 중동, 남·중앙아시아, 서반구, 아프리카 지역별 전략에 대한 목표를 제시했다. 일부에선 인도·태평양 의제를 제일 앞세운 것은 중국이 추진하는 육·해상 경제벨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르데즈먼 전략의장은 “새 NSS가 제시한 지역적 전략의 목표는 구체성이 떨어지며 의미 없는 내용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들이대면서 동맹국과의 협력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전후 질서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며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의 전략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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