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

입력 2017-12-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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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비리 혐의로 기소돼 검찰이 징역 10년,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1심 법원이 징역 1년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어제 신 회장의 508억원 횡령 배임 혐의 중 일부만 유죄로 판단하고 계열사에 471억원을 지원한 것은 ‘경영상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징역 4년, 벌금 35억원이 선고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구속은 면했고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당초 신동빈 회장이 법정 구속이라도 될 경우 그룹 경영 전체가 사실상 마비될 위기였던 롯데그룹으로서는 일단 한숨은 돌리게 됐다. 하지만 검찰의 징역 10년 구형 후 롯데는 그룹 경영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재판 대응전략을 마련하느라 지금까지 새해 사업구상도 제대로 못 짰다. 기업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기업 총수가 징역 10년을 구형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 등 외국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한다. 무리한 검찰의 기소로 재계 5위 기업의 글로벌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신 회장 재판은 이게 끝이 아니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2, 3심에서 판결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더욱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은 신 회장은 내년 1월26일 이 사건 선고 공판도 앞두고 있다. 여기서 실형 선고라도 난다면 롯데그룹은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한국서 기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판부가 신 회장에게 구형량에 비해 상당히 경감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기소 자체가 과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6월 비자금 수사로 시작됐다. 그런데 별다른 혐의점이 나오지 않자 이른바 ‘먼지털기식’ 별건 수사를 통해 죄목을 늘렸다. 표적 수사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과거 결정에 대해 신동빈 회장에게 혐의를 씌운 것도 무리였다.

검찰의 별건 수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정 혐의를 잡고 수사에 들어갔다가 성과가 없으면 여지없이 별건 수사로 이어진다. 이는 이번 정권에서뿐 아니라 이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한화그룹 수사가 그랬고 효성그룹과 여타 그룹 수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뀌거나 검찰 총수가 바뀌면 더 심해진다.

‘심증과 정황’에 따른 수사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케이스다. 특검은 결정적 증거 없이 뇌물공여, 횡령 등 5가지 혐의를 씌웠고 1심 재판부마저 이를 받아들여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기업 총수 수사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이면 걸리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나”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것은 교도소 담장을 걷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1심 재판이 계열사를 지원해 배임으로 기소된 것에 ‘경영상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한 대목이다. 과거 다수 기업 총수들이 실형 선고를 받았던 부분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형벌로 단죄해왔던 배임에 대해 향후 재판부도 전향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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