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세계 1위… "삶의 질 추구" vs "과소비"

입력 2017-12-24 17:48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올해 여행수지 적자 150억달러… 50% 급증
"경기 회복 따른 자연스런 현상" vs "2600만명은 너무 많아"

경기 회복·원고에 너도나도 해외여행… 일본보다 800만명 더 많아

인천 취항 국내외 항공사 사상 첫 100곳 돌파
사드 보복에도 여행·항공업계 사상 최대 실적
올 관광적자 150억달러… '무분별 여행' 비판도



[ 박재원/김은정 기자 ]
짙은 안개와 뿌연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24일 오후. 인천공항은 성탄절 연휴를 맞아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5월과 10월의 황금연휴 못지않은 북새통이었다. 전날부터 항공기 지연·결항이 도미노식으로 이어지면서 짜증을 내는 여행객도 조금씩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행에 대한 설렘에 밝은 표정이었다. 한 대학생은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석 달 전부터 일정을 짜고 숙소 등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출국장은 올해 내내 해외여행 인파로 붐볐다. 공항 항공사 여행사 모두 돈을 벌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대가로 올해 150억달러의 여행수지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18년 연속 적자이자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158억달러 적자)과 맞먹는 규모다. 경기 회복, 소득 증가, 저비용항공사(LCC) 확산 등으로 해외 출국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한 데 비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의 여파로 방한 외국인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내국인 출국자는 지난해(2238만 명)보다 400만 명 정도가 늘어난 2600만 명(연인원 기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총인구 대비 출국률 50%는 세계 최고다. 작년까지 40%대의 출국률로 세계 1위를 유지해온 대만을 처음으로 제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1억2000만 명에 올해 출국자가 1800만 명(14%)에 그칠 전망인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인구 대비 출국자(1억5000만 명) 비율도 일본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급증하는 한국 관광객을 잡기 위해 해외 항공사들이 앞다퉈 인천공항으로 몰려오면서 국내 취항 항공사는 올해 처음 100개를 돌파했다. 인천공항과 김해공항 여객도 각각 역대 최대인 6000만 명, 1600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 공항 가운데 이용객이 6000만 명을 웃도는 곳은 인천을 포함해 일곱 곳(두바이, 홍콩, 히드로, 스히폴, 파리, 창이)에 불과하다.

저비용항공사(LCC)업계 선두주자인 제주항공은 올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000억원 달성을 노리고 있다. 올 3분기까지 매출 7348억원, 영업이익 83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31.9%, 54.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587억원) 규모를 넘어섰다.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도 연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전망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30세 이하 여행도 사상 최대

여행업계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행 수요가 다변화하면서 최근 패키지여행이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여행사인 하나투어 모두투어 인터파크(여행부문)의 지난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6.1%, 62.5%, 211.6% 늘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자유여행을 선호하던 젊은 층까지 패키지여행으로 눈을 돌리면서 예약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유난히 해외여행객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3%대로 올라선 경제성장률과 수출 활황에 따른 원화 강세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여기에 내년에는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2010년 12월 이후 6년11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1년 전 1200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은 1080원까지 주저앉았다.

원·엔 환율도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22일엔 2015년 12월 이후 최저치인 100엔당 952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원화 가치가 연일 뛰어오르자 소득이 없거나 적은 젊은 층도 대거 공항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29%이던 30세 이하 출국자 비중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30% 벽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해외 주요 관광지의 주요 호텔은 이미 연말 예약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내년 설 연휴에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도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허의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한 해외여행의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며 “소득 증가와 LCC 확대 등으로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지만 급증하는 여행수지 적자와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는 국내 산업계의 고민을 지켜보면서 인구 대비 50%의 출국률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의 관광수지 적자가 112억달러에 달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들도 있다.

이기종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반도체 호황에 취한 나머지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행태를 우리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출국자 증가폭만큼 늘 수 있도록 관광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최근 국내외 지사 영상회의를 주재하며 “내국인 출국자가 외국인 입국자의 두 배를 웃도는 기형적인 상황이 10년 만에 다시 나타날 게 확실시된다”며 “이런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는 만큼 특단의 대책을 건의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내 여행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이른 시일 내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에 견줄 만한 경쟁력을 갖춘 관광지역이 적은 데다 가격도 싸지 않아 ‘이럴 바엔 해외여행이 낫다’고 여기는 여행객이 많다는 것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에서 보듯 내수 관광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도 적지 않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교수)은 “관광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부가가치와 취업 유발 효과가 크다”며 “해외여행 수요를 국내 수요로 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내수 진작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재원/김은정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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