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 된 기부문화 확 바꾼 영국 빨간 코

입력 2017-12-25 17:37  

도전 2018, 다시 블루오션 시대로

자선단체 난립→죄책감 마케팅→기부에 피로감

공공부문도 블루오션으로
SNS 통해 다양한 이벤트
기부를 즐거운 축제로
후원자 아닌 '팬' 만들어



[ 고재연 기자 ] 영국에서는 매년 3월 둘째 주 금요일이면 빨간 플라스틱 코를 끼운 ‘괴짜’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1985년 설립된 영국의 자선단체 코믹릴리프가 2년에 한 번씩 여는 ‘빨간 코의 날(Red nose day)’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코믹릴리프가 나오기 전 1985년 영국의 ‘자선모금 시장’은 레드오션이었다. 암 환자를 위한 자선단체만 런던에 600개가 넘었다. 노숙자를 위한 자선단체도 200개에 달했다. 이들은 한정된 기부금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출혈 경쟁을 시작했다.

부유하고 나이가 많은 기부자를 공략했다. 고액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명단을 공개했고, 1년 내내 부자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기부금을 내던 이들조차 피로감을 느꼈다.

영국의 코미디 작가 리처드 커티스와 코미디언 레니 헨리는 기부 요청이 천편일률적인 방식에만 매달린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코믹릴리프라는 단체를 설립해 익살스럽게 모금 활동을 펼치는 ‘빨간 코의 날’을 정했다. 1파운드를 내고 빨간 코를 구매하면 그 돈이 모두 기부금으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기부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심지어 노숙자도 참여하는 축제가 됐다. 아이디어와 용기만 있다면 돈이 없는 사람도 수백 파운드를 모금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 빨간 코의 날은 후원자가 아니라 ‘팬’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빨간 코를 단 사진을 올려 마케팅을 대신하면서 홍보비가 들지 않았다. 빨간 코 제작 비용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부담했다. 대형마트나 옷가게들도 마진을 받지 않아 유통비용도 들지 않는다. 기부금의 100%를 코믹릴리프가 내건 목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영국에선 전통적인 모금 활동의 75%가 코믹릴리프로 옮겨갔다.

코믹릴리프는 지금까지 영국에서 캠페인을 16회 개최했고, 10억파운드가 넘는 돈을 모금했다. 올해는 7300만파운드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2015년부터 미국에도 수출됐다. 3년간 1억달러가 넘는 기부금을 모았다. 약 830만 명의 어린이가 행사에 참여했다. 코믹릴리프가 레드오션에 빠진 자선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부금 시장도 레드오션 상태”라며 “소수의 고액 기부자나 대기업 후원에 매달리기보다는 소액 개인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블루오션 전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기부금 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미국(71%)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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