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오션에 갇힌 한국
기존 '경쟁의 틀'로는 새 시장·새 전략 못 찾아
수출 구조·주력 품목 과거 패러다임 벗어나야
[ 이심기 기자 ] 블루오션이라는 경영 용어가 세상에 나온 지 12년이 지났다.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의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2005년 《블루오션 전략》을 출간하면서 당시 ‘경영학의 교과서’로 군림하던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 뒤 많은 기업이 블루오션 전략을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2006년 블루오션 전략을 토대로 한 가치혁신 혁명을 통해 보르도TV라는 신제품을 내놓았고 TV사업 시작 34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랐다. 올해 방탄소년단이 미국 음반시장을 대표하는 빌보드 차트 10위에 진입한 것도 세계 음반시장에서 K팝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발굴한 결과였다. 아모레퍼시픽이 2008년 내놓은 신개념 화장품 ‘쿠션’은 연 1조원의 시장을 창출해낸 대표적인 블루오션 사례다. 서울 코엑스의 명소가 된 신세계 별마당도서관의 성공은 시장을 영리와 비영리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 블루오션 전략 콘셉트를 적용한 결과다.
블루오션은 가치 창출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뜻한다. 김 교수는 “기업은 물론 국가와 개인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쟁 중심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블루오션은 여전히 일부 기업의 전략으로 머물러 있다.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은 레드오션이라는 오랜 경쟁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모든 기업과 조직, 개인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최고경영자(CEO)들의 생각은 원가 절감과 차별화에만 매몰돼 있다. 몇 년 전의 블루오션 바람이 한때의 열풍에 그친 것도 기존 사고의 틀을 깨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K팝·쿠션…경쟁 뛰어넘은 블루오션의 성공 사례
한국의 경제구조 자체도 거대한 레드오션에 갇혀 있다. 올해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수출 상위 5개국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5%였다. 2000년 55.3%에서 낮아졌지만 여전히 절반을 넘는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졌다. 2000년 33.7%이던 미·중 수출의존도는 올 들어 10월까지 36.0%로 높아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충격이 한국을 흔들 때마다 대외변수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small-open economy)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말뿐이었다.
주력 수출 품목의 쏠림 현상도 달라진 것이 없다. 수출 상위 10대 품목의 비중은 1990년 33.4%에서 2000년 47.8%, 2010년 50.6%로 오히려 확대됐다. 올 들어 46.7%로 다소 떨어졌지만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상위 10개 품목이 떠안고 있다. 품목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과 휴대폰,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선박 등으로 10년 전과 엇비슷하다. 기존 품목의 순위만 바뀔 뿐, 신규 품목의 진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열풍과 함께 블루오션 전략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경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략으로 두각을 나타낸 기업이 속속 나타나면서다. 이익이 아니라 공유를 통해, 경쟁이 아니라 가치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성공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은 온·오프라인, 업종과 지역의 경계를 허무는 ‘모든 것의 기업(everything company)’으로 한때 세계 최대였던 유통기업 월마트를 넘어섰다. DVD 대여점으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며 콘텐츠 제작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동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국가와 기업, 개인 모두 과거의 시장에 매달려 있다”며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가 존재하는 블루오션으로 이동해야만 한국에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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